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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결국엔 위로 - 다큐 작가 정화영의 사람, 책, 영화 이야기 ㅣ 좋은 습관 시리즈 17
정화영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2월
평점 :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서로 다독여 주든 혼자 위로를 하든 불안한 시대인 것은 맞다. 책 제목에 끌렸고 읽고 싶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로 2018년 <엄마의 봄날>, 2021년 <백 투 더 북스>로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백금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주변을 스쳐 갔던 수많은 인연 사이에서 그들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때로는 위로를 보내며 이 책을 썼다. 저자의 경험이 바탕이 된 20개의 이야기는 위로에 관한 꼭 봐야할 책과 영화도 소개되어 있다.
남편과의 불화로 혼자 외롭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다른 남자와 불륜을 고백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기에 늦은 밤 전화를 걸었던 친구는 도와달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같이 일하던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는데 일이 바빠 대충 말하고 나중에 만나자고 한 후로는 연락이 되지 않은 일에 성급한 조언과 위로가 독이 되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역사를 서술하자면 처음은 어디이고 끝은 왜 없는지 장황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이 여성에게는 평생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안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 혼자 운전을 하다 터널에 진입한 순간, 몸이 이상하고. 발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팔과 다리가 경직됐다. 공황 장애가 오면 어떡하면 되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다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기를’‘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기를’‘손이 그만 떨리기를’‘이 공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글만 읽어도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열일곱살 때 집이 가난해졌다. 아버지의 과감한 투자가 빗나갔고 엄마가 포장마차를 시작했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포장마차를 부끄러워하는 남편을 향해 분노했다. 엄마의 서러움과 슬픔,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지고 공감하기 고통스러웠다. 저자가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라는 인생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의 자살로 인해 살아 남은 자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까. 친구 언니가 손목에 피를 흘리고 있어 병원으로 갔다. 사람을 살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지만 가족들은 칭찬도 고맙다는 말도 안 했다. 입원 수속을 할 때 환자 상태에 대해 ‘자살 시도’라고 정직하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다는 친구의 어색한 변명을 듣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저자의 친구가 된 오빠 친구, 그 오빠가 간암으로 간 이식이 필요한데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고민도 하지 않고 간 이식을 결정했고 아들이 후유증을 겪지 않을까 울기 시작했다. 어떤 위로도 힘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저자도 함께 울고 있었다. 늘 바쁜 엄마에게 공중전화로 걸려온 아들의 한 마디 ‘엄마는 나를 믿나요?’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늘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학 때 친구와 사소한 일로 거리가 멀어진 경우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가 힘들 때 어떤 위로도 전하지 못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저자는 친구 관계가 위태로울 수도 있어 대답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 듣기를 바라는 말과 진심이 다를 때, 조심스러우니까. 나의 진심을 꺼내 놓았을 때 그녀와 그들에게 미움받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메멘토’를 떠올린 것은 61년생 신영숙 씨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 권유로 중학교 중퇴 서울의 한 방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벌어 들인 돈으로 엄마와 외삼촌이 진 빚을 대신 갚고 두 동생의 학비를 충당한 사람이다. 그런데 신영숙 씨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딸 집으로 와서 같이 산다. 저자가 왜 나만 공장에 보냈느냐고 물어보셨냐고 하니 엄마의 기억을 놓아버려서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새로운 기억을, 그것도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위로’라는 선물을 받을 것이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책과 영화는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씨앗이 될 것이다. 저자는 특별한 위로자는 아니지만, 당신이 어떤 위로라도 해달라고 내 팔을 두 번 친다면. 함께 대화하자고 손 내밀 수 있다고 했다. 서툰 위로였지만 결국은 나를 향한 위로 였다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