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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평점 :
이 책은 희망고 재단을 이끄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마마리로 불리는 패션디자이너인 저자가 어머니에게 띄우는 편지글이다. 저자는 평생을 봉사와 희생으로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면서 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오신 어머니의 가르침들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에어컨이 잘 가동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밀린 일을 하느라 분주하면서 왜 이렇게 더운 거냐고 짜증을 냈다. 50도를 넘기는 아프리카에서도 즐겁게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 답을 찾아냈다. 아프리카에서는 더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선택이 없었고, 누구나 그 더위를 견뎌야 한다. 자신이 미워했던 누군가를 향해,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누군가를 향해, 네가 나에게 모질게 했던 모든 잘못을 용서해줄게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며 이해했다. 누군가를 용서하기보다 먼저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일부터 생각해야 했다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저자의 어머니는 버려진 물건들을 환상적으로 살려내셨고 곰팡이 슬어 쓸모없어진 커튼을 치자 꽃물을 들여서 아름다운 한복을 지어 입으셨다.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외면당한 사람들을 아무 대가 없이 보듬으며 ‘네가 장하다, 장한 사람이다’ 격려하고 돌봐주셨다.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처음 말씀드렸을 때 당부하셨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한다. “무슨 일을 하든 혼을 박아서 해라.”(p216)
비우기, 버리기, 정리하기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되는데 포기하는 훈련을 반복하면 어느덧 후련함, 개운함, 깔끔함, 그리고 마음의 평화까지 찾아오는 것 같다.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까지 미련 없이 버릴 때 비로소 진짜 귀중한 것이 드러난다.
매일 매일 바쁘게 살다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어 허전했다. 김혜자 선생님을 만났는데 “우리 아프리카 갈래?” 자선봉사 활동을 떠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하던 일을 팽개치고 아프리카로 가는 짐을 쌌다. 그게 희망고의 시작이었다. 톤즈에서 편안하고 행복했던 마음이 어렸을 때 살았던 해남의 따뜻한 추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아프리카에 희망의 망고나무를 심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고 아프리카에 망고나무 한 그루를 선물해서 그 나무가 커가는 걸 보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희망고 빌리지’를 세워서 여성교육 센터, 탁아소, 컬처 센터와 희망고 학교, 망고 묘목장 등이 있는 희망고 빌리지가 되었다. 어머니가 보셨으면 기뻐하셨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행복은 찰나이고 고통은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사실 생로병사라는 말을 봐도 생 말고는 다 고통스러운 일들이잖아요. 우리가 살면서 무지개 뜨는 날을 보는 건 평생 손꼽을 정도이고, 더구나 쌍무지개를 직접 보는 건 일생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하는 일일 거예요. 결국, 인간의 인생 스토리는 고통이 핵심주제인 게 맞는 거 같습니다.p124~125
저자는 갱년기 증상을 10여 년 겪으면서 얼굴이 심술쟁이처럼 변한 것 같아, 어떻게 되돌릴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방법이 거울 보며 웃어주기였다. 갱년기를 나만 오래 겪는게 아니구나 위안이 되었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고 머릿속에서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저자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의 행동이 죄다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연민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젊을 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정을 통제할 힘이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참기 싫다고, 사소한 어려움에도 참거나 타협하지 않고, 곧바로 통증을 호소하려 든다.
마흔 초반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많은 재산을 잃고 누명까지 쓴 일이 있는데 그때는 아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잃었으면 분명 반대편엔 얻는 게 있으리라 생각하며 찾아보니 대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의 자유와 편안함을 얻은 것이라고 미소가 지어졌다. 에필로그는 김수덕 어머니의 이야기로 장식했다. 우리나라 1호 간호사로 평생 가난하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돌보며 헌신의 삶을 사셨다. 패션디자이너 저자가 어머니에게 띄우는 성찰과 희망, 위로의 메시지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