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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ㅣ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26/pimg_7583281443207232.jpg)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트리플 시리즈 아홉 번 째 작품으로 신종원의 [고스트 프리퀀시]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짧은 분량의 세 편의 단편과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보다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읽은 자리를 맴돌기를 몇 번을 거듭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그눔 오푸스]
양계진 씨는 손자의 태몽을 꾸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뱃놀이를 갔던 고향의 늪에 들어가 황금 잉어를 들어 올린다. 용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거북이의 음성이 들리지만 주인은 따로 있냐고 물으며 내놓지 않는다. 그후 노인이 되어서도 꿈은 계속 꾸게 되면서 질식사의 위기 속에서 돌려줄 수 없다고 입을 연다. 노인은 파킨스병을 앓고 있었고 손자가 할머니 고향인 창녕을 데려가주는데 꿈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자신의 태몽을 아버지가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생명뿐 아니라 죽음마저도 훔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 시들어가고 있는 신경 다발들을 두 손으로 붙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제 그 손은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나톨리아의 눈]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사용하며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0~99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음악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 가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서로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제일 흥미로운 이야기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수업을 할 때 학생이 따옴표 대신 66과 뒤집힌 66, 99를 이용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어렸을 때 겪은 음향 사고로 인해 영영 음치가 되어버린, 어느 세이렌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썼는데 주위 음치들로부터 크게 항의받았다. 음치들이 그들의 애창곡을 곧 잘 파괴한다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가령 너는 우리 음치들에게 모욕감을 줬어. 우리 음치들이 얼마나 노래를 존중하는지 보여주마.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p98
표제작이기도 한 [고스트 프리퀀시]는 박지일과 나의 이야기다. 그와 나는 은평구 역촌동 버려진 가정 주택으로 갔다. 낭독 공연이 열리는 장소는 45평 크기의 어느 입방체 구조물이 삼중으로 조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었다. 70년대 양옥에서 생기 따위는 찾아 볼 수 없고 시인 박지일은 악몽을 꾸었는데 목소리가 따라 붙는다고 했다.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목소리를 세 편의 시를 탄생시킨다. 나는 나는 에디슨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반복 재생하고 있다. 송화기는 에디슨의 음성신호를 기계 장치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설계되었다. 이 동영상에는 1877년 뉴저지에서 녹음된 에디슨의 음성 자료가 담겨 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 때, 에디슨이 말한다. “어린 친구, 그 빌어먹을 기계장치를 얼른 내려놓으시오.”(p124)
[운명의 수렴] 에세이
짐을 정리하던 작은 어머니가 쓰러졌고 그 병은 오래됐다. 할아버지도 수척해면서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를 돕게 됐다. 등산을 하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쓰지 않는 근육들을 주물러 풀어주는 일로 환대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애도의 맥락을 저자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졌다. 이제는 아버지도 자기 몸으로 시간을 잰다. 아빠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하면 웃어버려야 농담으로 남는다.
저자는 에세이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이 소설들을 쓰기 위해 석 달을 고민했고 첫 문장을 쓰느라 애를 먹었다. 소설이 잘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해 동료 작가와 의견을 나눌 기회도 많다. 소설은 운명과 닮은 구석이 많고 그래서 매력이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한동안 인간이 사려 깊고 선한 척 애쓰는 기계처럼 보였다. 소설가는 어떤 목소리를 남길지 고민해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해설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난해하다.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신비로운 여운을 남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