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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ㅣ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평점 :
한국인이 사랑하는 동물, 호랑이는 왜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는가? 호랑이를 이 땅에서 몰아낸 것은 누구인가? 이 책은 우리나라 최고의 생태 작가이신 이상권 선생님이 조선 호랑이 멸종사를 밝힌다. 호환(虎患)이란 호랑이한테 당하는 피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쓰였다. 인간은 땅을 뺏으려고 했고, 호랑이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다.
조선 정부는 한양에 ‘호랑이를 잡는 군대’ 착호군을 배치하고 지방 각 군현에는 착호인을 한 명씩 두었다. 전국에 배치된 착호인이 1만 명 가까이 되었다. 조선시대는 문반과 무반이라는 양반 지배계급이 있다. 각 지방에서 거둬들인 호피는 왕실 창고에 보관되어 필요할 때마다 팔기도 했지만, 왕실 외에 벼슬아치들에게도 배분되었다. 양반일수록 크고 화려한 호랑이 가죽을 사용해서 가마를 만들었다. 가죽을 구할 수 없다면 가마에다 호피 무늬 그림을 그려넣었다. 여자들은 호랑이 가죽보다 표범 가죽을 더 좋아했다. 표범 가죽이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조선은 호랑이 사냥을 독려하기 위해서 ‘호피공납제’를 실시했는데 겨울 석 달 동안 매달 한 마리씩 사냥해 석 장의 호랑이 가죽을 바치게 했다. 조선인들은 기를 쓰고 호랑이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호랑이는 줄어드는데 계속 잡아내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가짜 호피가 등장했다.
중국 사람들은 “조선인은 1년의 반을 호랑이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가 사람을 잡으러 다닌다!” 호랑이만 잡으면 높은 벼슬도 주고, 부자가 된다면서요? 하고 비아냥거리지만 조선호피를 갖고 싶어 했다. 해마다 각 마을에서 호피를 석 장씩 거둬들였는데 해마다 1,000장이 넘었다. 이 말은 한 해에 1,000마리의 호랑이가 죽어갔다는 뜻으로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는 사방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한다. 인간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고, 다른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눈을 아주 좋아한다. 달빛이 쏟아지는 겨울밤이면 하얀 눈이 잔뜩 내린 곳으로 와서 신선들이 춤을 추듯이 혼자 논다. 일본이 한일합방이 되던 날, 호랑이 이름을 바꿨다. 원래 범이었으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자마자 범 호 자에다 늑대 랑을 결합시켜서 호랑이라고 부른 것이다.
저자의 고향은 호랑이가 많기로 유명한 영광군과 함평군에 걸쳐 있는 불갑산의 한 자락이다.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로부터 정호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평생 산포수로 살아왔다고 호랑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작가님이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호랑이와 표범이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주로 호랑이 수컷이랑 표범 암컷이 결혼하는데, 그 후손을 ‘수호’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수호는 체구가 표범보다 훨씬 크고, 몸 곳곳에 표범 무늬가 섞여 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표범 이야기는 슬프다. 표범에게 한국전쟁은 큰 시련이었다. 여항산 골짜기에서 부부 표범은 행복하게 살 생각만 했다. 암컷이 먼저 일어나 목이 말라 골짜기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수컷은 졸음이 밀려와 잠을 청하려는데 인간과 마주쳤고 사람들을 믿었던만큼 피하지 않았다. “탕”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몸이 솟구쳐 올랐다. 신문에도 크게 나왔던 일인데 한 마리가 죽었기에 살아 있는 한 마리가 주민이나 나무꾼들에게 복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들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살아남은 암컷의 행방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가 즐겨 듣고 흥얼거리던 노래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에 나오는 성황당은 원래 ‘산왕당’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산왕은 호랑이 신을 모시는 곳이다. 한국의 신화는 호랑이 신을 빼면 초라해질 정도로 호랑이 신이 성황당으로 변해온 것 또한 우리의 역사라고 한다. 인간들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한국에는 호랑이가 남긴 가죽은 거의 없고 그 이름만 남아 있다는 마지막 말이 새삼 느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