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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ㅣ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는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들은 추억을 소환한다. 각각 주인공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해 보려고 과거로 향한다. 요즘 유행이 되는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에서 만경은 항상 외톨이였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수진이었다. 만경의 형은 수진이 오빠와 동갑이고 절친으로 둘은 수진의 집에서 게임을 하면 만경은 수진이가 만화 영화를 볼 때 멀찌감치 떨어져 TV만 쳐다 볼 따름이었다. 영문도 없이 수진에게 얻어 맞은 만경은 반년 뒤, 수진의 집 거실에서 만화책을 읽었다.
중학생이 되자 만경과 수진은 만화책 때문에 교실을 오고 갔고 수진의 동아리에 가입했다. 수진의 친구 지수를 소개 받았고 만경의 이상형이었다. 어느 날 지수와 수진이 입맞춤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만화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면서 피해다녔다. 만경은 어른이 되었고, 형은 수진이 결혼한다고 전해주었다. <카드캡터 체리> <환상게임> <후르츠바스켓>의 애니메이션 등 수진은 만화를 즐겨봤고 리디북스에 BL소설을 연재했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에게마저 비밀에 부쳤다. 호오가 적게 갈리는 대중적인 취향을 가장했다. 이른바 ‘일반인 코스프레’였다.
[코인 노래방에서]
연인과 코인노래방을 간 나에게 감성이 올드하다는 말을 들었고 레트로가 유행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친구 정우를 떠올랐다. 나는 조용하고 우울한 중학생으로 컸고, 정우는 바깥으로 뿜어내버리고 후련하게 웃어버렸다. 웨스트라이프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이어폰을 빼앗아간 정우는 자기도 좋아하는 가수라고 했다. 일주일 내내 붙어 다녔고 학교가 파한 뒤 서로의 집으로 놀러 갔다. 주말에는 정우를 따라 교회를 다녔다. 가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 정우는 같은 반 아이의 멱살을 잡고 있었는데 우리를 자주 게이라고 놀리던 친구였다. 농담으로 여친, 남친 했던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정우는 그날 이후 눈을 마주칠 수 없고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나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 신께 기도했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추억은 보글보글]에서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고 외로웠던 나는 원경과 <보글보글> 게임을 하고 놀았다. 원경은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오락기 위에 올리고 비어 있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오락기들이 뿜어내는 BGM과 효과음, 스틱을 돌리고 버튼을 연타하는 소음, 사람들의 탄성. 옆자리에 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조리 음소거 된 것만 같았다.
옛 친구 도진은 술만 마시면 자꾸 옛날 얘기를 꺼냈다. 케케묵은 얘기들만 골라서 꺼냈다. 우리는 도미회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건을 끄집어낼 기세로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도진을 따라 추억 여행에 동참하고 말았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함께 겪었던 에피소드를 안줏거리 삼는 도진은 정도가 심했다. 그때 네가 그랬잖아, 내가 언제. 나한테 왜 그랬냐, 어?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유년 시절 친구였다. 그런 도진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담담했다. 도진과 함께한 마지막 술자리가 떠올랐다. 앞으로 평생 지난 일만 생각해야 하는 저주에 걸린 것만 같았다.
아케이드오락기의 컨트롤러와 가정용 비디오게임의 패드가 두 개인 까닭은 당연히 둘이 함께 게임을 즐기라는 뜻이었다. 몸을 붙이고 한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그 일에 온전히 모든 걸 내던지는 것, 원경과 함께한 <보글보글>틀 통해 깨달은 사실이었다. 2인용 버튼을 눌러야만 시작되는 다채로운 사랑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마지막 편 에세이에서 저자는 2008년 NASA는 지구에서 431광년 떨어진 북극성을 향해 디지털 신호로 노래 하나를 쏘아 올렸다고 한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띄워 보내는 멜로디와 메시지는 음악을 선곡하는 일과 소설을 쓰는 것은 크게 다를 바도 없다. 이 소설집은 작가의 첫 책이고. 이곳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오롯이 단 하나의 책을 위해 쓰인, 말하자면 당신, 독자에게만 보내는 열렬한 신호라고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