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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독일어권 문학의 거장 레오페루츠의 대표작 국내 초역으로 이 소설은 요슈 남작이 기록한 것이다. 1909년 9월 26일, 요슈 남작은 고르스키 박사와 사중주를 연주하기 위해 궁중 배우 오이겐 비쇼프의 초대를 받았다. 오이겐의 처남 동료인 엔지니어 발데마르 졸그루프를 소개해준다. 그날 조간신문에 은행의 도산에 관한 토막 기사를 읽었다. 그 내용을 비쇼프만 모르고 있어 비밀로 하려는데 남작은 말 실수를 하였다. 디나는 졸그루프 씨한테 불친절하다고 타박을 준다. 남작은 배신당한 사랑의 아픔 때문에 질투를 느낀다.
9월 26일부터 닷새 동안에 벌어졌다. 연주를 마치고 오이겐 비쇼프가 남작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란하고 불안한 표정을 짓더니 오싹할 만한 이야기를 해준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장교의 죽음에 대해 말을 하던 오이겐 비쇼프가 자살을 한 것이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고 남작이 의심을 받게 되는데, 디나와 과거에 연인이었고 비쇼프가 죽기 직전 증오의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엔지니어가 제일 먼저 비쇼프를 발견했기에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배우의 죽음과 관련된 연쇄 자살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는 분노, 비난, 혐오, 놀라움, 고통, 비탄, 그리고 한없는 절망이 느껴진다. 엔지니어는 별채에서 어떤 단서들을 찾아냈고, 그것들을 가지고 그가 살인범이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방문객이 누구인지 추리해 냈다. 거리를 나섰을 때 사람들이 남작을 바라보는 비난의 눈초리라는 망상을 겪기도 하였다.
약사인 폴디는 심한 골초였고, 최근에 경련을 일으켰다. 가브리엘 알바하리의 아들 에드문트 알바하리는 10년 째 정신병원에 있었다. 추적은 어느 고서에 적힌 제조법과 먼 옛날 정신착란으로 죽은 한 화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유명한 건축가이자 화가인 조반시모네 키기를 <심판의 날의 거장>이라고 부른다. 화가와 사망자들의 연쇄 자살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일종의 괴물. 혐오스러운 피조물이 예술가들에게 아주 특별한 매력을 발휘한다. 한 사람은 화가였고, 다른 사람은 배우이다. 엔지니어는 조사 중에 약간의 행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놈은 예상한 것보다 강한 무기를 가졌다. 자신은 동양에서 전쟁에 함께 했고, 최후의 심판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더 이상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던 엔지니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복잡한 비밀을 풀어 나갈수록 충격적인 반전, 쉬이 읽히는 문장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피를 보는 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추리 하는 과정은 소름끼치게 오싹 그 자체다. 인간 내면 밑바닥에 자리 잡은 〈공포〉라는 감정의 근원을 파헤치며,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 액자 구조를 가진 [심판의 날의 거장]은 이미 일어난 일, 더는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거부! 모든 예술의 원천이 아니던가? 편자의 말대로 한 편의 예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