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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아래에서 - 한의로 대를 잇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의보감
전재규 지음 / 산지 / 2021년 1월
평점 :
한의로 대를 잇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의보감
아버지가 걸어온 의업의 길을 올곧게 이으려는 아들의 각오이다. 암투병으로 죽음의 순간에도 아들에게 맥을 잡아보라던 아버지,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에게 배움을 주고자 했던 아버지의 사랑이다. 책 속 부자의 의술 여정 가운데 감동이 녹아 있다. 한의학 처방과 치료와 관련한 경험들이 흥미롭다. 아버지라는 살구나무 아래에서 미래를 꿈꾸고 한의사로 성장해가는 저자의 의업 분투기 정말 감동적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16세에 함창 지역에서 유명했던 권약국 집에 머슴살이 10년을 했다. 낮에는 권약국의 약방 업무와 농사일을 해야했고, 밤에는 시간을 쪼개어 의서를 공부했다. 27세에 한약업사 면허를 취득하셨고, 탄광 경기가 좋던 점촌에 한약방을 개원한 것이다.
“행림(杏林)이라고 들어봤니? 남강 할아버지가 잠깐 이야기했던 살구나무 이야기다. 중국 삼국시대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병이 나으면 돈 대신 살구나무를 받았단다. 그 의사가 어찌나 명의였는지, 나중엔 그 주변 산이 살구나무로 가득 찼단다. 살구나무 숲은 명의이기도 하고 인술을 베푸는 의사이기도 한 거야.”(p39)
아버지가 어린 시절 무심코 건넸던 한의사의 꿈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수 끝에 입학한 한의대, 약사 한약 조제권 반대 시위로 유급, 휴학계를 내고 군 입대 등 성장 과정이 책 속에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작약을 직접 재배하여 약재로 쓰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자신의 이득보다 환자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본과 1학년 때 아버지가 쓰러지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영창당한약방을 맡기도 했다.
친구 아버님을 진찰할 때의 경험을 듣고 아버지는 양방이든 한방이든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환자가 낫는 거에만 집중하고 이제 시작이니 실력을 계속 쌓거라 하였다. 개원을 준비하는 대신, 주역 책을 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의역동원(醫易同源). 의학과 역학은 근원이 같다고 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수백 년 전 명의들의 조언은 나의 화두였다.
세상을 알기 위해 무작정 배낭을 짊어지고 인도로 향했다. ‘죽음의 집’ 봉사활동을 하면서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숭고한 자세를 배웠다. 6년 전 뇌경색이 온 이후부터 아버지도 이곳저곳 탈이 나기 시작했다. 정기검진을 받으며서 암 진단을 받았고 두 달후 어머니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투병하는 중에도 대장암 수술을 받았던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노심초사했다. 어머니를 향한 마지막 처방전을 말씀하셨다. 개원할 때 아버지의 한약방 ‘영창당’ 상호를 따르고 싶었지만 아들에게 맞는 이름으로 해야지. 의인한의원으로 정하고 진료한지 12년이 되었다. “넌 나의 그늘에 있으면 안 된다. 나를 뛰어넘어라.”(p218) 아버지라는 나무 아래서 뛰어 놀았다. 아버지는 커다란 살구나무였음을.
나의 아버지, 나의 스승이신 당신을 기억해 봅니다.
요즘 하이얀 살구꽃이 피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고향에 내려가면, 당신 앞에 살구꽃 한 가지를 올려놓으려 합니다.(작가의 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