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평점 :
[글쓰기에 대하여]는 시, 소설, 논픽션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저자가 40년의 작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을 펼쳐내는 책이다. 여섯 번의 대중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으로,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친근하고 솔직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만 읽어 보아서 글쓰기 책이 궁금했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작가는 서문을 쓰면서 이 중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목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동기에 관한 질문이었다. 글쓰기는 어둠, 그리고 욕망이나 충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고,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애트우드는 해당 주제에 접근할 때, 일반적인 작법서나 작가로서의 자서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밝힌다.
저자의 곁에는 늘 책이 있었고 일찍이 읽는 법을 깨쳐 독서광이 되어 잡히는 대로 전부 읽었다. 실제로 친척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다 보니 양가의 할머니들은 동화 <빨간 모자>에 나오는 할머니 같은 가공의 인물이나 다름없었다. 열여섯이 될 때까지 독서 경험은 폭넓으면서도 무차별적이었다. 저자는 어떻게 작가가 된 걸까? 1956년, 축구장을 가로 질러 하교하던 중에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된 거였다.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대부분의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그 말이 ‘작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방금 전에 읽었던 그 책의 작가를 절대 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까.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출간할 때가 되면 책을 썼던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고 없다. 또는 그렇다고 알리바이를 둘러댄다.
초기 낭만파들이 설화와 민담에 매료됐던 것을 볼 때, 그 문을 통해 그토록 많은 닮은꼴들이 낭만주의와 후기낭만주의 문학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이런 ‘닮은꼴’ 이야기와 그 수 많은 후손들은 보통 광란과 공포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문학적 가치와 돈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돈이 되는 좋은 책, 돈이 되는 나쁜 책, 돈이 안 되는 좋은 책, 돈이 안 되는 나쁜책. 이 모든 조합은 실현가능하다. 하이드에 따르면, 진지하게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예술의 영역과 돈의 영역을 중재해줄 수 있는 중재인을 잘 얻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체면 구기는 지저분한 흥정에서 손을 뗄 수 있다.
“무명인”은 작가입니다. 물론 독자도“무명인”이지요. 그런 점에서 모든 책은 익명이고, 모든 독자도 그렇습니다. 읽고 쓰는 것은, 이를테면 연기하는 것과 극장에 가는 것과는 달리 둘 다 어느 정도의 고독, 나아가 어느 정도의 비밀주의를 전제로 하는 활동입니다.p192
애트우드가 작가가 되었을 무렵엔 여성 작가, 특히 여성 시인이 되면 얼마나 고약한 일을 겪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저메인 그리어도 정성을 들여 집필한 자신의 저서 <단정치 못한 시빌들>을 통해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여성 시인들의 슬픈 인생사와 암울한 죽음에 대해 설명했다. 불운한 여성 예술가는 특히 소설가들이 자주 찾는 단골 주제로 아직도 주목받고 있다. A.S.바이어트의 소설 <소유>는 인물에 복잡하게 변화를 주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여성 시인을 등장시킨다.
글쓰기는 다른 예술, 또는 오늘날의 매체와 어떻게 다를까? “모든 종류의 예술가는 총살 집행장에 일렬로 줄을 서 있다”는 악담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는 전부 같다. 작가는 지면과 소통한다. 독자 역시 지면과 소통한다. 작가와 독자는 오직 지면을 통해서만 소통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삼단논법이다. 모든 작가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 계속 글을 쓰는 한, 작가는 앞서 글을 썼던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된다. 죽은 자들이 제아무리 보물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산 자들의 땅으로 되가져와 시간 속에 또 한 번 들이지 않는 이상, 그러니까 관객의 영역에, 독자의 영역에, 변화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이상, 그 보물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갈등들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글쓰기 앞에 가로놓인 난제에 비틀거리지 않도록 지적인 다독임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