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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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 제국을 다스렸던 10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창건자이자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시작해 대략 350년 뒤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제국 동부 콘스탄티노플에 새로운 수도를 개창한 제2의 창건자 콘스탄티누스로 마무리 된다. 이들은 개인보다는 제국을 우선하는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제국의 존속을 위해서 핏줄이 달라도 계급이나 심지어 인종이 달라도 황제로 삼았다. 권력을 집중하기 위해 황실은 여성들을 가문의 일원으로 십분 활용했다는 것이 놀랍다. 정략결혼이 횡행하고 내분과 살인은 빈번했으니 불행한 가족이기도 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 누이의 아들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총망 있는 조카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삼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옥타비아누스는 복수를 하기로 한다.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이기고 원로원에 의해서 아우구스투스로 지명되며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다. 딸 율리아 아들들이 죽자 예정했던 후계자를 잃어버렸다. 양자로 얻은 티베리우스가 후임자로 임명된다.

 

티베리우스는 정책성과를 놓고 판단한다면 로마에서 가장 성공적인 황제 중의 한 명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제국의 경계를 안전히 지켰고, 대내적으로는 원로원을 영구적으로 황제에게 복속시켰다. 네로는 성공적이라기보다 가장 자극적으로 흥미를 돋우는 황제였다. 리라 반주를 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는 레슬링을 연습했고, 결국에는 시합에 나갈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필 시 원고들이 그의 사후에도 수십 년 넘게 남아 있었고, 후대의 한 관찰자는 그 시들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 최초의 귀족이 아닌 지배자였다. 이집트에서 그는 때를 기다렸고,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왕의 신통력을 과시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재판을 주재하는 동안 그는 두 평민을 치료했다고 한다. 신성한 새로운 재능의 표시였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건축 계획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바로 콜로세움이다. 여기에 투입된 노동력은 아마도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자유민과 노예, 포로들을 아우를 것이다. 포로들은 유대 전쟁에서 끌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40대에 황제가 된 트라야누스는 인생의 전성기에 있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했으며, 에너지와 계획들이 넘쳐났다. 비록 군인이었지만 트라야누스는 좋은 정치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차분하며, 개인적인 공격들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드리아누스는 제2의 아우구스투스를 자처해 제국을 평화롭게 하고 엘리트 계층을 외부자들에게 개방하는데에 대다수의 황제들보다 더 크게 공헌한 황제이지만 그는 살인을 일삼는 폭군이기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책을 낸 유일한 황제이고 스토아 철학자였다. 스토아 철학은 법을 존중하고 공익을 우선시했다. 그는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했고, 위대한 황제가 되었다. [명상록]에서 신에 대한 두려움과 관대함, 나쁜 짓을 하는 것뿐 아니라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품는 것 자체를 삼가도록 가르치고 더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습관을 멀리하고 소박한 사람을 살도록가르쳐준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내비친다.

 

세베루스는 로마 최초의 아프리카인 황제였다. 그는 속주 출신의 인물들을 최고위직에 임명하고, 군대를 중요시하면서 기사계급이 원로원 바로 아래 계급이 되었다. 세베루스가 죽은 뒤에 서방 제국은 250년간 더 이어진다. 그의 많은 행위들은 비록 전통을 거슬리기는 했어도 필요한 것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직업 군인이었다. 최초이자 최대 업적은 폭력의 악순환에 갇혀 있던 제국에서 안정을 회복한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막시미아누스를 카이사르로 임명하여 갈리아로 파견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미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 즉 공동 황제로 임명하고 그에게 서방을 맡겼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인이자 기독교인이었다. 군인이며 정치가, 건설자였다. 무자비하고 외골수였지만, 가장 성공적인 황제들은 다들 그러했다. 그는 전사이자 행정가, 대중홍보의 천재이자 종교적 환영을 보는 사람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 치하의 로마 제국은 세계 최강 국가들 중의 하나였고 콘스탄티노플은 가장 위대한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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