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장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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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데뷔작이기도 한 [빈 옷장]은 스무 살의 자신이 받은 불법 낙태 수술에서 시작한다.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서 낙태 준비 체조를 한다. 그 더러운 자식은 잘 웃었다. 그 쓸모없는 부르주아.. 내 몸을 만진다. 시작되는 순간을 상상한다. 아니 에르노 작품은 남자의 자리, 진정한 장소, 빈 옷장, 세월을 읽고 있는 중인데 진정한 장소는 에세이고 세 작품은 소설이다. 공통점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나 거짓 없는 글쓰기에 있다. 글을 읽는 독자는 작가와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어 좋다.

 

부모님의 카페 겸 식료품점은 사람들로 붐빈다. 덩치가 남산만 한 알렉산드르는 술에 취해 아내를 때리고, 딸에게 술 심부름을 시킨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오는 날도 있다. 그들은 공사가 끝나면 떠났고, 그것이 내 삶에 있어서 유일한 슬픔이었다. 우리는 남고 다른 사람들은 사라진다. 임신했다고 말하면 부모님은 발작을 일으킬 것이다.

 

낙태 시술자는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름을 지어내려고 했는데, 학교를 기억하기는 쉽다. <저 애를 사립 학교에 보내면 더 잘 배우고 아이들이 더 단정하거든> 모네트는 공립 학교에 다니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손님들에게 사과했다. <잘 가르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립이 공립보다 덜 멀어서 그래요. 데려다주기에 더 편하니까. 우리는 너무 바쁘잖아요.>

 

어린 시절 부모님은 뭐하냐고 묻는다. 친구들은 식료품점을 하니 사탕을 많이 먹겠네. 카페도? 그러면 취한 사람들도 있어? 역겨워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여러 번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 시작한다. 선생님의 질문에 하나도 틀리지 않고 대답하고 싶다. 괴롭히는 애들에게 엿이나 먹어라 욕을 해준다. 나의 우월함과 복수를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학교의 가벼운 놀이에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딸, 당신의 딸 드니즈는 천부적인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공부하고 카페의 상점 위에서 호텔이 있는 것처럼 잠이 드는 것을 고마워하게 될거라고 말씀 하셨다. 뭘 갖고 싶은지? 어머니는 읽는 것이라면 모든 게 좋다고 믿었다. 부모님은 외상으로 파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우리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 공부나 열심히 해. 너는 나중에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좋은 직업을 갖도록 공부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5개월 동안 만났다. 토요일 네 시 반 혹은 일요일, 미사에 가야 할 시간을 잘 골라야 한다. 매번 지난번에 했던 여행을 다시 한다. 부모님은 벼르고 있었다. 공동묘지 길에서 부랑아 같은 놈과 뭘 하고 다닌 게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얌전한 줄 알았지. 열 다섯에 남자들과 놀아나는 이 동네 여자애들처럼 된다. 너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공부하는 아이라고. <나는 그저 노동자일 뿐이었지만, 네 나이에는 품행이 단정했어> 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혹시라도 너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면, 이 집에 발도 들이지 마라. 어머니는 옆집의 광견병 걸린 개처럼 나를 가뒀다.

 

계단, 거리, 다리를 걸으면서 하나만 생각한다. 낙태 전문 산파의 주방의 테이블, 긴 솔로 씻어내 주는 그 산파를 찾아야 한다. 흑인 여자, 은밀한 친구, 그녀는 어느 지붕 아래 숨어 있을까. 산파를 찾는데 두 달이 걸렸다. 부모님 집에는 갈 수 없다. 그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 모두 잊자. 나는 학위 수료증을 받을 것이다. 어머니는 믿지 않을 것이고 내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리라 생각할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첫 작품, 빈 옷장은 그녀의 이름 앞에 늘붙는, ‘자전적 소설의 시초이다. 작가의 체험을 썼고, 그녀의 말처럼 기억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은 있을 수 있겠으나, 거짓과 허구는 없다. 다만 드니즈 르쉬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다. 저자는 글쓰기란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는 행위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형태를 만들어 존재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칼에 손가락을 베인 사람을 보면 내 손가락이 욱신거리듯이, 우리는 그녀의 글을 감각으로 느낀다. 살아낸 글, 살아서 건너오는 글, 그것이 바로 아니에르노의 문학이 가진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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