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엔딩 (양장)
김려령 외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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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아몬드, 페인트, 유원까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엮은 소설집 [두 번째 엔딩]을 가제본으로 받았다. 여덟 편의 단편 중 세 권을 읽어보았다.

 

*구병모 [초원조의 아이에게]

이방인에 대한 혐오와 치유의 이야기를 다룬 강렬한 판타지 [버드 스트라이크]의 외전

*김려령 [언니의 무게]

한 소녀가 왜 자살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뜨거운 이야기 [우아한 거짓말]의 외전

*김중미 [나는 농부 김광수다]

농촌에 살고 있는 중학생 소년 유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모두 깜언]의 외전

*배미주 [초보 조사관 분투기]

빙하로 뒤덮인 시대에 지하 문명 도시를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첨예한 SF [싱커]의 스핀오프

*백온유 [서브]

살아남은 아이의 복잡한 심리를 완성도 있게 그려 낸 [유원]의 외전

*손원평 [상자 속의 남자]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를 그린 [아몬드]의 외전

*이 현 [보통의 꿈]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기점인 일제 감정기, 한국 전쟁을 그린 [1945, 철원][그 여름의 서울]의 외전

*이희영 [모니터]

국가에서 아이를 키워 주는 양육 공동체가 실현된 미래 사회를 그린 [페인트]의 외전

 

김려령 [언니의 무게]

너는 네 몫만 하면 돼. 자기 몫만 하고 사는 것도 힘들어. 마음은 기특하고 예쁜데, 너는 너로만 살아. 엄마는 그랬으면 좋겠어.”p27

 

천지는 벌써 청소년 자살률 통계로만 남았다. 누구는 그 숫자에 놀라고 안타까워했으나 누구는 그저 그런가 보다 무관심했다. 어떤 이에게는 영원히 아픈 현실이 다른 이에게는 통계상에 나타나는 수치일 뿐이었다. 미란의 아빠가 한동네로 이사 와 엄마에게 수작을 부렸더라도, 딸들이 나란히 친구가 되어 같은 일에 연루되기는 힘들었다. 한 언니는 동생을 방관했고, 한 언니는 동생을 적극적으로 돌봤다. 미란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잃고 싶지 않은 친구였다. 동생이 밖에서 맞고 오면 언니가 가서 때려 주는 법이다. 자신은 오히려 함께 식사하며 떠들었다. 미라는 천지의 죽음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미라도 알 것이다. 부모들 일이 천지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손원평 [상자 속의 남자]

나는 상자 속에 산다. 상자 안은 안전하다. 그 안에 머물면서 세상을 지켜보고 관찰한다. 형의 얼굴은 굳어 있고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리는 것만 한다. 형은 밝은 미소를 아낌없이 내비치던 사람이었는데 상자 밖으로 부주의하게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위험에서 구해주고 난 후 형은 어두운 6인 병실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쌕쌕댄다. 그의 시간은 십이 년째 멈춰 있다.

 

사람들이 쉽게 감사의 마음을 잊는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굳이 남들이 감사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험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절대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일을 겪으면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한 식당 문이 열리고 모녀에게 한 남자가 그녀들을 향해 흉기를 들고 다가가고 있었다. 쓰러진 그들을 바라보는 한 소년이 보였다. 참고인 조사도 받고 장례식장에 갔었다. 소년은 눈밭에서 엄마와 할머니를 잃은 아이였다. 아이는 화낼지도 누군가를 탓하거나 원망할 줄도 몰랐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멀리 뻗지는 못한다 해도 주먹 쥔 손을 펴서 누군가와 악수를 나눌 용기쯤은 가끔씩 내 볼 수 있을까. 형의 말대로 삶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 내가 알고 싶었던 답을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다.

 

이희영 [모니터]

가디들이 하나 둘 회의실에 들어왔다. 윤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늦잠으로 인한 지각임에 틀림없었다. 오늘 모니터는 센터장인 박과 신입인 윤의 차례였다. 박이 멀티워치를 작동해 방을 한 바퀴 스캔한 뒤 의자에 걸터앉았다. 드물긴 해도 아이가 가디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지 엿들으려는 부모들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고유번호를 지니고 사는 그는,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과연 진짜 정답이라 믿느냐고.

 

센터에 경고음이 울렸다. 복도에서 헬퍼와 가디 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외부자의 침입은 아니었고 시스템 오류도 발견되지 않았다. 제누 301을 바라보았다. 한 달 후면 센터를 떠날 녀석은 어느덧 박과 마주 볼 정도로 자라 있었다. 부모 면접을 포기한 아이였다. 윤은 왜 가디가 됐냐면 밖에 아이들처럼, 때론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면서 자연스럽게 커도 된다고 말해주려고요. 윤이 된 노아가, 가디가 되어 다시 센터를 찾은 말썽쟁이 노아 208이 웃으며 소리쳤다.

 

창비청소년문학상 1회 수상자인 김려령 작가부터, 배미주 이현 김중미 손원평 구병모 이희영 백온유 등 청소년문학과 성인문학을 넘나드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완성도 높은 단편이 실렸다. 전작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던 인물들의 속내까지 따스하게 보듬으며 모든 삶이 조명받아 마땅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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