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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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2000년간 가장 정통한 로마 이야기로 인정받는 책으로, 원서 21-30권을 담은 [리비우스 로마사3]에서는 한니발 전쟁기를 다룬다. 리비우스가 당초 150권으로 기획했으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142권까지만 쓰고 생을 마감했다. 아쉽게도 대부분이 유실되고,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1~10권과 21~45, 35권으로, 현대지성에서는 이 35권을 전4권에 담아 완역하였다.

 

한니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한 전사였고 미덕도 있지만 결점 역시 대단했다. 비인간적이라고 할 정도로 잔혹했고, 일반적인 카르타고인보다 더 신의가 없었고, 진실, 명예, 종교, 맹세의 신성함, 다른 사람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전쟁의 발단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스페인의 로마 동맹시인 사군툼을 포위 공격한 것이었다.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인들은 동부 스페인의 공동체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그곳에 진출한 카르타고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한니발은 카르타고 군과 코끼리들을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넘어 이동시켜 이탈리아를 침공해왔다. 여름의 초입에, 스페인에서도 수륙 양면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스드루발은 형 한니발에게서 인수한 함대에 전함 10척을 더해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고, 40척의 전함으로 편성된 함대 전부를 히밀코에게 맡겼다.

 

전쟁의 방향은 스키피오 형제가 함께 통제하게 되었다. 카르타고 군이 켈티베리아 인들을 상대로 전쟁에 열중할 때 곧바로 에브로 강을 건너 남하하는 것이었다. 적이 있다는 징후는 없었고 그들은 남쪽을 향해 사군툼으로 나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두 국가인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싸움은 모든 국가의 왕들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는 전쟁의 경과에 신경을 썼는데, 그의 나라와 모라 사이에는 비좁은 이오니아 바다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전쟁의 결과는 화급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베네벤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한니발은 네아폴리스 주변 지역을 초토화한 다음에, 놀라로 움직였다. 마르켈루스는 한니발이 접근한다는 소실을 듣자마자 법무관 대리 폼포니우스에게 수에술라 위쪽에 주둔한 휘하 부대를 인솔하여 놀라로 오라고 지시했다.

 

역사가들은 이 전투에서 한니발의 병사들이 8천 명, 캄파니아 인들이 3천 명 전사하고 카르타고 군기 15, 캄파니아 군기 18개가 로마 군에게 빼앗겼다고 기록했다. 내가 찾아본 다른 기록에선 실질적인 전투는 이보다 훨씬 소규모인 것으로 나와 있다. 로마 원로원은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집정관들이 야전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스드루발이 알프스를 내려와 이미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던 알프스 이쪽의 갈리아나 에트루리아에서 병력을 모으기 전에, 하스드루발 부대를 저지해야 되었다. 한니발 역시 별도로 상대해 주어야 했다.

 

스키피오는 기병들과 장교들이 용맹을 발휘한 공로에 따라 특별한 선물을 주었는데, 무엇보다 마시니사에게 가장 큰 상을 내려주었다. 스키피오는 살라에카에 강력한 주둔군을 남겨두고서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진군하며 공격적인 전술을 계속 구사했다. 도망간 하스드루발은 소수의 병사들을 데리고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도시로 갔고, 다른 모든 생존자들이 그곳까지 그를 따라갔다. 시팍스는 13km 떨어진 방비가 잘 되는 곳에 진을 쳤다. 그러는 사이 하스트루발은 서둘러 카르타고로 향했는데, 이는 최근 벌어진 참사로 카르타고 당국의 항전 의지가 약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로마 군은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는 전투가 실제로 기병대에 국한되었기 때문이었다. 전사자는 5천 명을 넘지 않았고, 진지 공격으로 붙잡은 포로의 수는 그것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적의 땅을 떠나는 한니발의 마음은 조국에서 추방된 자와 다를 바없이 비통했다. 그는 몇 번이고 이탈리아 해안을 되돌아봤고, 신과 인간을 모두 비난하며 승리를 거둔 칸나이의 전장에서, 카르타고 병사들의 몸이 여전히 유혈 낭자한 상태에서 곧장 로마로 진군하지 않은 자신을 저주했다.

 

한니발에게는 아주 참담하게도 대부분의 이탈리아는 카르타고 편에 붙지 않고 로마에 충성을 바쳤다. 결국 한니발은 기원전 203년에 게릴라 전술을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했다. 분명한 건 정복한 민족의 이름으로 기려진 첫 번째 장군이 스키피오라는 것이다. 후대에 들어와 스키피오보다 훨씬 명성이 덜한 승리를 거둔자들이 그를 선례로 삼아 가문을 묘사할 때 쓰일 명예로운 칭호를 얻고, 그 멋진 성을 후손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4권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생애 말년과 마케도니아 전쟁 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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