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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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토우의 집]장독 뒤에 숨어서라는 제목으로 계간 [자음과 모음]을 통해 2014년 봄부터 가을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고통과 상실의 현장을 다루고 있다. 토우의 집 배경은 삼악동이다. 삼악산 남쪽 면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생겨난 동네였다. 큰 길 곁으로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어 머리를 치켜든 다족류 벌레처럼 보인다고 해서 삼벌레 고개라고 불린다.

 

소설은 1970년대 일곱 살 동갑내기인 은철과 원의 시선을 통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펼쳐낸다. 김순분이 주인인 우물집엔 네 가구가 살았는데 도합 열세 식구나 되었다. 어느 날 새댁과 남편, 딸 둘(영과원)이 이사를 오게 되었다. 새댁은 펜에 펜촉을 끼워 남성적인 글씨체로 한문을 휘갈기는 걸 보고 복덕방장이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쏟아놓는다. 순분네 아들 금철은 동생 귀에 껌을 구겨 넣는 장난을 하고 병원에 다녀 온 뒤로 매타작은 종적을 감추었다.

 

모험의 등급도 고갯길의 등고선에 따라 나뉘는데, 아랫동네 소년들은 집 밖을 잘 나오지 않고, 윗동네 소년들은 위험한 모험을 하기도 하였다. 새댁은 아침이면 운수패를 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엄마와 딸의 대화가 정겹다. 새댁이 수영을 못하는 이유는 토끼띠여서 그렇다고 했다. 토끼는 물만 닿으면 죽으니까.

 

일곱 살 동갑내기 원과 은철은 비밀이 숨겨진 마을 삼벌레고개를 파헤치는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가려낸다. 나쁜 사람한테는 복수를 해야지. 원은 언니가 10원을 갚지 않아서 나쁜 사람이고 은철은 형이 딱지를 훔쳐 가서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더 억울한 건 그들이 한 살을 먹으면 저들도 한 살을 먹으니 평생 여섯 살의 차이를 좁히지 못할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두 꼬마들은 동네 사람들 이름을 알아낸다. 순분이 주도하는 계모임에서 나이가 많아 큰형님인 이정자, 남편이 사우디에 있다고 사우디집 최은숙, 통장 박가네는 김언년, 운문원에 임보살, 보험여자 성계희, 운문원 공양내기로 일하는 똥순할매, 뚜벅이할배 그의 아들 바보 곰딴지, 이름은 고상한인데 특이해서 괴상한 씨로 부른다.

 

새댁은 양복점을 하는 원의 큰아버지를 찾아갔다. 그 녀석이 여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경락인가 뭔가 몹씁 짓거리에 가담하고 있다며 걱정하는 모습이다. 순분네는 계원들에게 새댁네 죽은 영가가 있다고 말했다. 새댁 시누가 피아노를 잘 쳐서 상금으로 미국을 갈 수 있었는데 육이오가 터져 그들에게 부역한 혐의로 감옥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피아노 대신 옷 만드는 일을 하다 계단에서 굴러서 앉은뱅이가 되어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새댁은 원이와 은철에게 은행놀이를 통해 숫자의 개념을 알게 해주었다. 어느 날 안덕규의 지인들이 새댁네 집에 모이기로 한 날 모시 입은 노인이 원에게 인형을 선물해주었다. 원은 동생이 갖고 싶어 이름을 희로 지었다. 새댁은 은철에게 손님이 오는 날에는 놀러오면 안된다고 하여 삐지게 된다. 똥순할매와 뚜벅이할배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할매의 깡패아들에게 박가네가 일러주었는데 그 다음 날부터 할배가 몸져 누운지 열흘 만에 죽고 말았다.

 

은철은 원에게 생 닭발을 먹게 하여 토하게 만들었다. 금철은 은철을 옆에 끼고 개천을 건너뛰는 모험을 하다 은철의 무릎이 깨지고 만다. 수술을 해도 평생 다리를 절어야 된다는 것이 은철의 부모는 망연자실한다. 순분네는 계원들에게 새댁네 시누 얘기를 늘어놓던 일을 생각했다. “그 죄를 다...어떻게 받으려고...”

 

양복 입은 남자들이 들어오더니 덕규를 데리고 나갔다. 자매들 이름처럼 아빠는 영, , . 돌아오지 못했다. 새댁은 남편을 묻고 나서 정신이 나가버렸다. 급기야 입원을 하게 되고 영과 원은 큰 아버지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순분은 원의 볼에 입술을 대고 기도하듯 속삭였다. “제발…… 잘살아라…… 원아…….”(p326)은철은 원이 안고 있는 희가 요괴 인형 같았다. 희가 우물집에 온 날부터 자꾸 나쁜 일만 생겼다. 새댁이 은철에게 놀러 오지 말라고 한 날도 그날이었고, 할배가 죽었고, 닭발 사건, 할매가 나갔고, 다리가 망가졌다. 안바바는 잡혀가서 죽었고 새댁도 미쳐서 병원에 들어갔다.

 

골목에서 문간에서 장독대에서 영, , ,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괴상한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괴상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토우의 집은 깜깜한 무덤

 

인혁당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이 소설은 토우가 되어 묻힌사람들의 자리, 역사적 비극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긴긴 성장통과 함께 써내려간 고통에 관한 고백이다. 토우의 집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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