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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할 때 - 프로이트처럼 살아보기 : 일곱 가지 인생 문제를 분석하다 ㅣ 매일 읽는 철학 3
멍즈 지음, 하진이 옮김 / 오렌지연필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프로이트,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할 때]를 읽으며 프로이트가 이렇게 멋진 로맨티스트였다니 놀라웠다. 이 책은 생명의 흔적, 인생의 만남, 생명의 중심, 정신의 분석, 내면의 중심, 추종과 배신, 생명의 으뜸 등 7장에 걸쳐 자율성, 낙관성, 적극성 등을 프로이트의 인생을 분석했다. 제목처럼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깨닫게 해준다.
프로이트의 가족은 유대인이었다. 아버지는 양털 판매 상인이었고, 스무살 어린 어머니와 결혼했다. 전처가 낳은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유대인 특유의 포용심과 자애심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데 힘을 다했다. 프로이트가 4살일 때 아버지와 산책 중 두 남자가 유대인이라며 무례한 행동에 놀랐지만 조상들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당시 취학 연령은 열 살이었는데 여덟 살인 프로이트는 학교에 보내주라고 졸랐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에 사람들은 놀랐고 어머니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프로이트는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인생 공부의 스승으로 여긴다. 쌀쌀맞고 거칠게 다루는 보모를 보고 충격을 받지만 엄격한 교육방식 덕분에 좋은 습관을 기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바둑과 같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게임에서 패하게 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인생은 바둑보다 더하다. 바둑처럼 한 수 무를 수도 없다.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p62
여덟 살에 세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했고, 괴테, 실러 등 사상가의 작품도 읽었다. 열 살 어린 남동생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장난기가 심한 남자아이로 사춘기를 접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여학생들을 존중했다. 자신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지인의 지지 아래 법률을 공부하고 사회 활동에 종사하겠다는 목표를 굳혔다. 나폴레옹도 숭배했던 인물 한니발 바르카스를 프로이트도 숭배했다. 한니발처럼 수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네가 법률을 공부한다면 정치에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유대인은 고위급 공직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평소 아껴주던 선생님은 말했다.
괴테의 에세이 <자연>의 한 대목을 교수의 낭랑한 낭독 소리를 듣고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함 속에 빠져들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매료 되기도 하여 인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사회 변혁을 이끄는 정치가가 될 수 없다면 의학을 연구하는 일도 괜찮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의과 학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철학과 문학도 계속 연구했다. 브뤼케 교수의 실험실에 가서 관찰과 연구를 했으며 교수는 정신병학에 조예가 깊은 뛰어난 생리학자인 요제프 브로이어를 소개받는다. 브뤼케가 연구 공간을 제공해주고, 브로이어가 연구 방향을 제시해주는 가운데 프로이트의 의학 연구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1882년 4월 어느 날, 여동생 안나의 친구인 마르타 베르나이스를 첫 눈에 반했다. 프로이트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그는 사랑에 빠진 감정과 느낌을 맘껏 음미했으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유명한 <사랑의 심리학>을 쓸 수 있었다. 가난뱅이 청년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마르타 부모님 반대에 부딪혔지만 마르타는 과감하게 사랑을 선택했다. 부모의 반대로 이별은 3년 동안 이어져 밤낮으로 프로이트는 마르타에게 보낸 편지는 900여 통에 달했다. 4,5페이지에 걸친 장문의 편지였는데 12페이지에 달하는 것도 있고 심지어 22페이지에 달하는 편지도 있었다. 대단하다.
프로이트는 진료소를 개업하였다. 환자의 병세가 진전이 없자 의학과 결별했다.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을 창시하였다. 프로이트와 브로이어는 심리분석학의 첫 번째 사례 보고서인 <안나 O 사례>를 공동 발표했다. 브로이어 교수는 프로이트를 피했을까. 그와의 결별과 동시에 동료들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되었다. 생물학자 플리에스가 다가와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환자의 병례를 관찰하다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리다 그것은 신경증 연구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억압’이라고 정의했다. 억압을 관찰하는 좋은 사례는 당장 기록했다.
그에게는 추종자들도 있지만 배척과 배신을 겪었다. 자신을 추종하던 아들러와 결별하고 구스타프 융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처럼 잘 지냈는데 사이가 나빠지면서 자세히 분석한 후 ‘죽음 본능’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프로이트는 노벨상 수상 후보자로 선정되었지만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 죽기 전까지 총 서른세 차례에 걸쳐 후보자고 선정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프로이트가 인생의 마지막 책을 완성한 뒤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프로이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프로이트는 고통스러운 통증을 참으면서 집필을 끝냈던 것이다. 의사가 금연을 권했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암이 발병하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16년 동안 서른세 번의 수술을 했다. 1933년, 나치가 무차별적인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자 병든 몸을 이끌고 영국까지 피신했다. 이국 타향에서도 관찰하고 연구하고, 병자를 치료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책을 썼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정신분석의 대가는 그렇게 초연히 세상을 떠났다! 프로이트의 인생 역정을 읽어보니 멋진 남자가 배척을 당할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할 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