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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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네 번째로 만나 본 이 책은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匠人)뮈사르의 유언]과 에세이 [문학의 건망증]등 총 네 편의 작품을 묶었다. 짧은 이야기 뒤로 남겨진 긴 여백 속에서 작가의 세상을 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젊은 여류 화가는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을 듣고 고뇌한다. 초대를 받고 나지막이 주고받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 깊이가 없어요> 그녀는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다.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여인은 3만 마르크를 여행에 다 써버리고 자신의 그림들을 구멍내고 찢었다. 139미터 아래로 뛰어내렸다. 앞에서 말한 평론가는 젊은 여인이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것에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평을 기고했다. <거듭>이라고 썼다. 그녀의 죽음 후 관점을 뒤집어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는 글을 쓴다.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그런 그의 말 한마디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 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인지라 이런 말을 들었다면 발끈하고 화가 날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그런 행동은 아니지 않는가.

 

[승부]에서 두 남자가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구경꾼들은 냉담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의 젊은 남자에게 쏠린다. 늙은 체수 고수 []과 젊은 도전자처럼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뱃심도 없는 구경꾼들은 젊은이가 쓴맛을 보게 해 줄 새로운 대가라 생각하고 응원의 눈빛을 보낸다. 삶에 짓눌려 욕망을 억누르고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뒷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장인(匠人)뮈사르의 유언]은 죽음을 앞둔 성공한 보석 세공업자인 뮈사르가 자신의 일생을 분명하게 깨달은 것과 알고 있는 내용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숙명으로 유언을 남긴다. 제네바에서 태어난 뮈사르는 20년동안 금세공사로 파리 전역에서 명망 있는 보석상으로 성공하였다. 사업 규모 덕택에 부유해져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정원에서 돌 조개를 발견하고 이것이 인간을 질식시키고 세계를 황무지로 만들고 온 천지를 돌조개의 바다로 변화시키는 것을 발견하고 연구에 몰두한다. 삶의 비밀을 알아낸 대가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뮈사르를 보고 삶이란 무엇일까 머릿속에 맴도는 이야기다.

 

문학의 건망증에서는 작가 자신이 독서 체험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유명한 시에서 시인이 누구였더라? 이 순간 시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인용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행만은 불변의 도덕적 명령으로써 지워지지 않고 기억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이 멋진 시에 그런 내용이 있다. 그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지금 책을 한 권 읽으면,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처음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기억력이 책 한 페이지를 기억하기에도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단락 하나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 가며 읽어 본다. 그러면 낱말 몇 마디는 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 낱말들은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는 어두운 전체에서 쏟아져 나와 읽는 순간 유성처럼 빛나고는, 곧 다시 완전한 망각이라는 레테의 강으로 깊이 가라앉는다.(p74~75)

 

세 편의 이야기는 삶과 인간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나의 원을 그린다. 삶이란 중심축을 다른 방향으로 조명하면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해 생각하게 유도하는 듯 보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음에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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