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왕자 - 노천명 수필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2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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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시인으로만 알려진 노천명은 사실은 뛰어난 수필가이기도 하다. [언덕의 왕자]에는 지금껏 국립중앙도서관 보존문서 서고 속에 깊숙이 파묻혀 잊힌 채 사라질 뻔했던 미공개 수필 작품 15편을 비롯하여, 평생에 걸쳐 집필한 112편의 노천명 수필을 모두 수록하였다.

 

노천명은 고향 황해도에 대한 향수가 강했다. 그래서 고향==바다가 연결되어 있다. , 바다, 해변, 수평선, 갈대밭, 소녀의 꿈 등 소녀 시절 체험한 풍물들이 수필의 중요한 주제가 되는 이유다. 노쳔명의 수필은 여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보고서의 연정선상에 있다. 가정과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수필에는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마음이 느껴지는 소재와 그 속의 표현이 은근하고 정겹다.

 

지금 내 주위를 끄는 것은 한포기의 맨드라미인데, 이거야말로 흡사 그 언덕 일대의 왕자다. 예쁜 꽃자루를 가리켜 맨드라미 빛 같다지만 어쩌면 이렇게 고울 수 있으랴. 그런데다 또 어쩌자고 맨드라미 꽃송이가 이처럼 탐스러울 수가 있으랴. 박람회 화초부에다 갖다 놓는다면 이는 틀림없는 특등감이렷다.(언덕의 왕자) 서울에 올라와 동네 아이들이 시골뜨기라고 놀렸다. 이모 아주머니란 분은 재미있었다. 밖에 손님이 오셔서 이리 오너라.”했다.“거기 아무두 없느냐?” 할멈도 할아범도 없는데 해라를 하고, 문도 안 열어 보며 영등박같이 또랑또랑하게 말로만 해내는 것이 나는 말할 수 없이 우스웠다. 인순이는 제일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인순이는 내 이름도 채 몰랐다. 시골 애라고 알았을 따름이었다.(시골뜨기)

 

달 아래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군색스럽지 않아도 좋은 넓은 마당에는 이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두레방석이 깔려지고 여기선 여름살이 다림질이 한창 벌어지는 것이다. 멍석자리에 이렇게 앉고 보면 시누이와 올케도 다정스러울 수 있고 과년한 큰 애기에게 다림질을 잡히며 지긋한 나이를 한 어머니를 별처럼 먼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모깃불) 세월은 잔인하게도, 너무도 잔인하게 이 어린것들에게까지 쓴 세상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6.25사변은 실로 한국에 뛰어든 마귀할멈이었다. 숱안 사람을 못 쓰게 만들어놓고 간 데마다 마귀 작대기를 휘둘러 불길한 씨를 뿌렸던 것이다.(산다는 일)

 

이 지긋지긋하던 부산이 막상 아주 떠나려고 드니 어쩐 일로 이처럼 발이 안 떨어지는가 모르겠다. 비가 오면 이 방송국 올라오는 길이 얼마나 나를 혼냈던 것인지 모른다. 작년 겨울에는 무려 세 번을 이 언덕길에서 보기 좋게 넘어진 일이 있었고, 날이 좋은 날엔 그대로 또 먼지가 그것에 지지 않게 대신 괴롭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떠날 날이 다가선다. 거기 따라서 나는 하루라도 될 수 있으면 이 집과 같이 해 주려고 일찍 집으로 들어온다. 집 뒤의 녹음이 나날이 짙어져 한창 펴가는 처녀처럼 탐스러워진다. 모든 것이 이 같이 아름답게 보임은 다름 아닌 분명 작별을 하는 까닭일 게다.(작별은 아름다운 것)

 

삼 년 동안을 서울 시민들은 부산에서 객 노릇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피난을 내려올 때 세상엘 갓 나서 강보에가 싸여 가지고 안겨서 업혀서 내려온 그 애기들은 부산에서 배밀이리를 배우고 일어나 앉는 것을 익히고 기는 것을 알게 되고 걷고 말을 하게끔 되었다. 이렇게 성장하는 세월을 순진히 부산서 보내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삼 년씩이나 눌어붙어 갈 줄 모르는 염치없는 손님을 거기서 더 어떻게 해주랴. 부산 인심도 그만하면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다. 부산서 광복동 거리는 집을 떠난 우리들의 미칠 것 같은 마음을 때로 얼마나 어루만져 주었으며, 특히 송도 바다는 또 향수에 젖은 우리들의 눈을 그 몇 번이나 달래 주었는가?(신세진 부산)

 

오히려 나이를 먹음으로써 인생은 정말 더 호화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가슴이 생기는 것도 나이가 먹어서요, 인생의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을 알아보고 중한 거싱 분별되고, 이리하여 정말 사랑도 할 줄 알게 되는 것은 모두가 젊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나는 한 번도 정말 마음에서 내가 늙었다고 생각이 든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반회장 연두저고리며 무색옷들을 그대로 다 간직하고 아직도 조카딸에게 내 줄 생각은 없으며, 청춘이 가질 수 있는 엠비션을 아직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있다.(하나의 역설)

 

부록으로 노천명은 왜 평생 독신생활을 하였을까 발굴자료와 시인의 생애 연보를 수록하였다. 노천명은 4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고 문학에 충실했고 그의 공사 생활이 순결! 그것으로 일관해왔다는 것은 정평으로 되어 있다. 자신의 사생활, 주변에는 언제나 비밀이라는 장막을 내려 가리고 있었다. 누가 사생활을 건드리기만 하면, 남의 걱정이나 남의 일에 참견을 말고 자기 앞일이나 똑똑히 처리하라고 쏘아붙이고 보면 사생활이나 주변에 대한 일들은 억측에 불과하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노천명의 수필은 고독을 사랑하고 즐기라고 권한다. 고독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서정적인 작품들이다. 소설집 우장, 시집 사슴의 노래, 수필집 언덕의 왕자를 끝으로 노천명 전집 종결판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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