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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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겪는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춘천 인문학카페36.5도 운영자 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여성혐오가 일상화된 한국사회를 사는 20대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과, 그를 통해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만났다. 페미니즘은 내 경험을 글로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오랜 명제는 내 글이 사적이고 의미 없는 글이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를 붙잡았다.

 

책에는 저자와 저자의 주변 사람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크고 작은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었던 이야기들이 나온다. 여자는 정숙해야 한다는 엄마의 핀잔, 남자들과 달리 택시를 탈 때 카드로 비용을 결제하려면 기사에게 욕을 듣는 경우가 잦았던 일, 대중교통에서 몸을 비벼오던 남자,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 신뢰나 권력관계를 이용한 남성 지인들의 성추행,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니었다며 우는 기혼 친구, 동생과 친구를 임신시키고 책임을 회피했던 그들의 남자친구들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고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위안을 느낀다. 스무 살은 무조건 대학생이거나 재수생이어야 하고, 여자는 머리가 일정 정도 이상 길어야함은 물론 예뻐지길 욕망할 거라는 견고한 편견들, 생각 없는 질문은 관심의 얼굴을 하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저자의 엄마 일탈로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된 이야기, 오랜만에 만난 이모가 조카에게 결혼을 재촉하고 비혼주의라는 의사를 무시하고 부모님의 이혼이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타인의 기준 바깥에서 살아가는 건 수많은 눈총을 받는 일이었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비켜서서, 상대가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주지 않기로 하고부터 비난과 소곤거림을 감내해야 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뒷담화이다.32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며, 오히려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걸 나누고 싶어 [인문학카페]를 오픈했다.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임을 시작할 때는 상상력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지 못했는데, 책보다도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정한 페미니즘은 없다. 나는 누군가 허락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생각이 없다. 이것은 나도 모르게 가하는 폭력을 성찰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거부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력을 저지르곤, 쉽게 잊고 산다. 가해자는 자신이 한 일을 몰라도 되는 입장이다. 그래서 항상 피해자가 폭력을 증언해야 한다.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단순히 지식만이 아닌 삶 자체이기 때문에, 쉽게 질문을 던지고 소비하듯 간편하게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태도에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뜨거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은근한 깨달음이 주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혀서, 위로받은 밤이 고마워서 쓴 글도 있다. 행간에 스며 있는 거친 내 감정 결을 보노라면, 숨기고 싶은 만큼 꼭 말해져야 한다는 확신도 들고 내 감정은 결코 사소하지도 않고, 내가 겪은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단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직시하는 것을 넘어, 그 일들이 일어난 저변에 깔린 여성혐오와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와 타인에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내 글을 통해 나라는 타인이 당신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당신의 이야기도 말해지고 들리길 바란다. 그 과정은 분명 불편한 일이겠지만, 우리를 자유롭게 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다. 그래서 함께 자유로우면 좋겠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녀가 단단한 존재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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