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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 - 노천명 전 시집 ㅣ 노천명 전집 종결판 1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이 책은 한국 현대시의 가장 아픈 상처 노천명 문학의 종결판이다. 노천명 묘 시비에는 [고별]시 끝 부분만 새겨져 있다. 친일시인이라는 시민사회 형벌 탓에 어떠한 안내판 하나도 없다. [사슴의 노래]에는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4편의 시집으로 엮였고, 마지막 장에는 처음 공개하는 시로 구성되었다.
제1시집 [산호림]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1938년에 시인이 스스로 만든 자가본으로 발간하였다. 대표작 [사슴]을 비롯하여 4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최재서는 산호림을 읽고 노천명을‘자제의 시인’이라고 높이 평가하였고, 모윤숙도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다.“작품들은 유년을 회상하면서 향수의 감정을 드러낸 경우(중략) 그리고 사랑과 고독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출한 경우로 대별할 수 있다. 이 시집에는 절제되지 못한 감상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기도 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감성으로 자아를 응시하고 우리의 토속적인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제2시집 [창변]은 8.15 해방을 코앞에 둔 1945년 2월 매일신보사가 발행하였다. 이 시집에는 다수의 친일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노천명 전 시집]에 삭제하지 않고 모두 공개하였다. 이제 이런 흠결마저도 노천명 문학의 한 부분으로 수용해야 한다. 노천명 시인의 친일 시만 수록한 것은 아니다.‘기댈 데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창변]을 비롯해서 어릴 적 고향을 향토적 서정 속에 풋풋하게 표현한 가품들이 수록되었다.
제3시집 [별을 쳐다보며]는 1953년 3월 30일 부산 피난지에 임시 주소를 둔 희망출판사 발행이다. 표제 시 포함 전3부 6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한국전쟁 기간 중 부역 혐의로 투옥되어 치른 수난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옥중 시편들과 함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을 담았다’고 시인은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별을쳐다보며/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p115)
제4시집 [사슴의 노래]는 1957년 6월 16일 노천명 시인이 작고한 후 1년이 되는 1958년 6월 15일 한림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조카 최용정이 흩어져 있던 유고와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특히 [나에게 레몬을]은 거의 임종 직전에 씌어진 시다. 이 시에서 노천명은 평생 숙명처럼 젊어지고 있었던 고독의 성(城)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허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슴의 노래/고독이 성처럼 나를 두르고/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달도 없어 주/눈이 나려라. 비도 퍼부어라/가슴의 장미를 뜯어버리는 나은/슬퍼 좋다/하늘에 불이 났다/하늘에 불이 났다(p193)
나에게 레몬을/말도 안 나오고/눈 감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고/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어른거리는데/좋은 말 해줄 친척도 안 보이고!/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없음 향취 있는 아무 거고/곧 질식하게 생겼소(p216)
노천명 전 시집에는 32편의 미정리 작품을 시인이 생전에 펴낸 두 권의 시집과 사후에 유족(조카)이 펴낸 한 권의 시집, 그리고 [노천명 시 전집] 등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 29편과 노천명 시인이 번역한 시 3편 등이다.
그동안은 노천명 시인이 발표한 친일 시를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사슴]의 고고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1943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발표한 작품들인데, 조선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거나 조선인 출신으로 전사한 가미카제 특공대 병사들을 칭송하거나 전쟁 지원을 권하는 내용들이다.
[사슴의 노래] 전 시집을 읽고 나니 암울한 시대를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의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가 느껴진다. 소박한 서정성이 어우러진 노천명 전 시집을 깊어 가는 가을에 한 편씩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