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 - 노천명 소설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3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천명(1911~1957)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하는 시 구절로 국민적 애송시가 된 [사슴]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라는 구절로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쓴 시인이다.

 

노천명 시인이 죽기 한 해 전인 19561231일자 조선일보에 올해 못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수필에서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우장]에는 노천명이 발표한 소설은 여덟 편과 인물평전, 문학론,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두 편의 일기중에서 병상일기는 시인이 백혈병 증세가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져 삶과 죽음을 오갈 때 쓴 글이다. 마지막 일기를 쓰고 3개월 뒤인 1957년 세상을 떠났다.

 

심부름꾼 계집애를 하나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 돼서 어머니에게 정지 계집애를 구해 보내달라고 가을부터 부탁을 해 왔건만 달포를 두고 빈 소식 뿐이다. 언년 어멈이 바지런하고 부모도 없고 두시기 십상이라며 시월이를 데려왔다. 내가 시골로 이사를 갔을 때 옆집 머슴으로 일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고기를 구워서 식기 전에 먹으라고 해도 싫다고 하고 정말이지 얘가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는 데 울고 싶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인간이란 남에게 제가 모르는 이런 사랑을 줄 줄도 모르려니와 받을 줄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 본다.(사월이)

 

삼십이 넘도록 여편네도 새끼도 없이 남의 집 머슴살이 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구경하던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달구지꾼은 황 서방의 멱살을 잡아 낚아챘다. 비틀거리다 소의 뒷다리를 밟았다. 소가 꼬리를 휙 쳤다. 소의 옆구리를 차는데 황막 색시가 하하 웃는 가운데 소에게 받쳐 죽음을 맞이하는 황서방의 운명을 어찌하리오.(우장雨葬)

 

총을 맨 사람이 찾아왔다. 친구 K의 의붓동생이었다. 김수임이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협력을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나의 큰 오산이었다. 남쪽을 향해 빠져 나가리라 궁리를 했다. 이 집도 영영 작별인 것이다. 새벽에 허름하게 차린 여인네가 하나 벌써 길에 보인다. 이 여인과 같이 나는 보퉁이를 풀 눌러 이고 서울을 서쪽으로 빠져 나갔다. 시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오산이었다)

 

동생이 여름휴가로 집에 가는 길에 누이에게 들게 되었다. 주인은 동생은 무슨 동생, 그렇게 큰 게 지금 계집애들 연앤가 뭔가 하면 으레 오빠니 동생이니 한다네. 뻔뻔스런 년들 이 말을 듣고 선옥은 치가 떨리고 분했다. 지금 선옥의 유일한 소원은 방 하나다.(하숙)

 

동창집에서 놀다가 늦게 귀가하던 시인이 주정꾼을 만나 겁이 나서 길 동무를 만나 지나가다 박종화 선생인 것을 알고 심심하면 에피소드를 꺼내 이야기꺼리가 되었던 사연은 재미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월파)선생은 등산을 좋아하셔서 백운대를 비롯 높은 산봉우리는 다 정복 하셨다.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농촌 사업을 하던 최용신 양이 세상을 떠난 사실이 있다. 재학시대부터 젊은 정열을 오로지 이 땅을 위해 일해 보겠다는 일편단심을 가진 그는 농촌사업을 많이 하다가 신학교를 나오게 되자 수원군 샘골이라는 곳으로 사업의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남을 도와주기 좋아하는 그 봉사적 정신을 가진 오월의 여왕인 이정애 여사는 한국 간호계의 선구자였다.

 

시인이란 한가한 가운데에서 시를 여기로 주무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별유천지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도 아닌 것이다. 시인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 국토편력, 결혼유한, 인골적 등은 다섯 번 여섯 번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시들이고, 시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인생을 알려는 이들에게 서슴지 않고 시집 [보리피리]를 권한다.

 

노천명은 남자들에게 쌀쌀맞게 대하던 그녀였지만 사랑했던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두 명은 유부남이었고 한 명은 백석 시인이 아닐까(추측이라고 한다) 밥벌이를 위해 취직한 매일신보에서 일제를 찬양하고 옹호하는 친일 시를 발표하는 일은 피할 수 없었나 [사슴]의 시인으로 고고한 삶을 꿈꾼 노천명으로서 불행하고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부역죄로 부산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석방된 후 부산방송국에 취직하였다니 웬지 반가운 마음이다. 이제 시집 사슴의 노래를 읽어 볼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