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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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어른을 위한 우화. 소설가 전경린은 이 작품을 일러 "따스함과 유머와 순수함과 충실성을 느끼게 하며 예민하고 남루한 우리들 인간의 영혼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치솟게 한다"고 평했다.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던 비둘기 사건이 터졌을 때 오십을 넘겼고 지워버리려고 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19427월쯤 어느 날 오후 어머니가 온데간데 없고 며칠 후 아버지마저 사라져 버렸다. 어린 누이동생과 기차에 몸을 싣게 되었고 생면부지 남자들이 시키는 대로 벌판을 가로지르고, 숲속을 헤쳐나가 다시 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친척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던 농가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지냈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였고 돌아왔을 때 누이 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아저씨가 정해준 처녀와 결혼을 권했고, 결혼 후 불과 4개월 만에 마리는 사내아이를 낳았고, 그 해 과일 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조나단은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 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금해 두었던 돈을 찾고, 파리로 떠나왔다. 큰 행운을 두 개나 잡았다. 은행의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고, 플랑슈가에 있는 집 7층에 <코딱지만 한> 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아침이면 일터로 가고 저녁이면 빵과 소시지와 사과와 치즈를 사갖고 먹고, 자고 또 행복해했다. 수십년이 흐르도록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살았다.

 

제대로 된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을 만큼 봉급을 받았지만 8친 프랑만 연말에 내면 조나단 소유가 된다. 죽음이 그 둘을 갈라놓기 전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조나단과 그가 사랑하는 방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될 터였다. 여기까지가 <비둘기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8월 어느 금요일 아침의 상황이다. 문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비둘기를 보고 그의 뇌리는 공포에 휩싸인다. 비둘기가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호텔에 묵을 준비를 해야했다. 방 값을 생각하고 있었다. 몇 달째 호텔에서 묵고 있기 때문에 잔금을 치를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 난감해진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로 한다. 비둘기에게서 멀리 멀리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조나단은 자신의 방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출근을 하고 나서 제일 값이 싼 방을 구하고, 짐을 프런트에 맡겼다. 빵과 우유를 사서 공원으로 갔고 그늘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거지가 훈제 정어리 봉지를 먹고 있었다. 30년 전에 그를 보았을 때 분노에 찬 질투심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자신은 9시 정각에 근무를 시작하고 생활비를 피땀 흘려 벌어들이는데 거지는 한 번도 골치 아픈 표정을 짓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거지가 급한 용변을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다. 너무 비참하고 메스껍고 소름 끼치도록 무서워서 조나단은 그때를 생각하면 몸소리가 쳐졌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거지에 대한 부러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기의 인생을 그렇게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이 생각할수록 천만다행이고 어떤 면으로 보나 참으로 행복한 삶이었다. 자신만만함과 긍지가 어느새 쇳물처럼 녹아서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평생토록 착실했고, 단정했고, 욕심도 안 냈고, 거의 금욕주의자에 가까웠고, 깨끗했고, 언제나 시간을 잘 지켰고, 언제나 모범생인 그가 쉰셋 되는 해에 어쩌다 큰 위기를 겪게 되어, 주도면밀하게 세워 두었던 인생의 계획을 몽땅 수포로 돌려 버리고 있는지.. 고작 비둘기 한 마리를 보고 쩔쩔매고 있었다. 조나단은 공포의 밤을 보낸 뒤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향한다. 그 깨달음은 세상을 향해 맞설 용기를 주었다.

[비둘기]는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이, 조나단 노엘을 통해 소유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바치는 인간의 모습, 언젠가 느껴 봤음 직한 생각들을 잘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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