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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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중에서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시와 철학이다. 저자는 시 21편을 통해 들여다보는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을 우리 삶을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되는 21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놓았다. 각 봉우리에서마다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한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내뿜는 다양한 전망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어떤 시간감, 리듬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리듬은 시인이 무엇인가를 낯설게 느꼈을 때, 그것을 새로운 말로 옮기려고 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시인이 느낀 것은 기존의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낯선 상처, 어떤 감각이다. 반면 철학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학문이다. 시인이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온갖 물고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라면, 철학자는 그물로 끌어올린 물고기를 다시 확인하고 만져보는 사람이다.

 

이 책은 김수영, 김춘수, 황동규, 황지우, 기형도, 최영미 등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 시인의 시를 통해 들뢰즈, 푸코, 사르트르 같은 현대 철학자들이 고뇌했던 문제들이 우리 현대 시인들이 고민했던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각적인 문장 속으로 녹여냈다.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라는 이름이 필명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시집을 통해서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온몸으로 노래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은 당혹했다. 새로운 글에서 노동 시인의 치열한 정서나 직업 혁명가의 차가운 이성이 사라지고 <화엄경>의 인다라 구슬이 보여 주는 낯선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고 난 뒤의 일을 죽는 사람 본인이 왈가불가한다는 것은 오만한 일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생기는 모든 외로움과 고통을 자기 혼자 짊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규원의 <죽고 난 뒤의 팬티>라는 시를 통해서 죽음과 삶을 대하는 자신의 속내를 피력한 적이 있다. 교통사고를 몇 번 겪은 시인은 겁쟁이가 되었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다면 육신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고독에 빠지는 것이다. 오늘날 모던이란 말은 근대혹은 현대라고도 번역되지만, ‘모던이란 말의 유래를 찾아보면 라틴어 모데르나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새로운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근대 사회는 현대 사회에 비해서 무언가 약간은 낡은 시대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근대 사회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새롭다는 강한 자부심과 경이로움을 담고 있는 표현이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시를 좋아한다. 시인이 말한 기다림의 순간이 사랑의 감정을 격렬하게 들끓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런 측면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내 앞에 부재한 애인이 내게로 오는 시간 동안의 초조함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고뇌를 따라 기쁨, 분노, 행복, 절망을 함께했던 과거의 긴 시간이 이제 시를 읽는 일에도 이렇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100권의 시집보다 어쩌면 시인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날 수 없으니 우리는 책으로 만나는 것이다.

 

우리 시 21편을 통해 들여다보는 현대 철학의 개념을 알아가고, 각 장 뒤에 [더 읽어볼 책들]에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집과 철학책을 소개하고 있다. 시로 철학을 읽으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철학책 읽기가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강의에서 다루어졌던 시집과 철학책들을 모두 사게 되었다고 행복한 불만을 토로하던 몇몇 분들의 얼굴도 떠오른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도 책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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