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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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비건에 기웃거리거나 지향하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아 쑥스럽고, 그렇다고 완벽해질 엄두는 나지 않아 고민인 회색 채식인들을 위한 가늘고 긴 비거니즘 이야기다.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몇 년 사이 자주 먹게 되었다.

 

생태와 다양성, 종차별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나의 입으로 여전히 버터가 들락날락한다. 상대적으로 전보다는 확실히 버터 소비를 줄였다. 그러나 종종 실패한다는 고백을 안 할 수 없다. 이런 내가 비건 지항이 될 수 있을까.

 

과도한 육식을 하는 사람보다 지구를 생각해 육식을 줄이는 나를 독려하되, 식습관은 물론 다방면에 걸쳐 삶을 친환경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며 머무름이 없이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음식 문제로 기분 나빠할 때가 아니다. 모두가 자기 몫을 함으로써 생태적인 문명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이다.

 

비건 지향의 실천을 한번에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일주일에 하루는 비건 식사의 날로 정하고 조금씩 그 정도를 늘려갔다. 좀 뿌듯한 느낌에 트위터에 비건 식사를 올렸다. 누군가 비건이세요?”라고 물어봤다. 자신이 없어서 그땐 플렉시테리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언젠가부터 집 안에 논비건 음식을 들이지 않았다. 비건 식단에 도전하는 날들은 늘어갔고, 누구도 죽이지 않는 식사에 감사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축산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환경에 얼마간의 파괴를 일으키지만, 밖에서 기르는 것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이유는 비효율성이다. 방목은 살짝 비효율적인 게 아니다. 동물 농장과 축산의 종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강인하고 적응할 줄 아는 종이다.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수없이 겪은 존재이다.

 

그럼 전문 요리사나 식당을 찾아야만 맛있는 비건 식사를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오히려 비건 채식 경험의 화룡점정은 평범한 가정에서 만났다. 군산에서 취재차 만난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어줬던 비건 샌드위치와 샐러드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다.

 

처음의 굳은 맹세는 어디로 가고, 나는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을 정당화해줄 논리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짐을 의식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는 경우도 점점 늘어갔다. 공연히 <동물해방>을 번역해 쓸데없는 골칫거리를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왜 그리 짜증이 밀려오던지...

 

한국에서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영국과 유럽 각지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흐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실하다. 회식에는 삼겹살, 배달에는 치킨의 야성이 굳건하고, 밖에서 식사할 곳을 찾으려면 부대찌개, 감자탕, 닭갈비, 보쌈 등 육식 메뉴가 점령하고 있어 채식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삶으로써 온갖 억측을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축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건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들에 타협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채식은 다층적이고 복잡한 현실을 놓치지 않고 마주하게 한다. 먹는다는 행위는 원초적이고 관계적인 행위이며 반복되는 일상인 만큼, 내가 누구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매번 자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스스로를 어떤 범주에 포함시키고 자신을 강박하게 된다. ‘비건이냐 아니냐를 구분하기보다 좋은 식습관에 대해 알아가고 조금씩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자본을 위해 만들어진 신화와 관습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의 경험은 새로운 문이다. ‘비건 지향적 삶은 충분히 즐겁고 설레는 선택이 될 것이다.

 

10인의 작가들은 채식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에게 불완전한 채식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응원한다. 일단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고기 없는 월요일이나 고기 없는 아침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완벽함을 벗고 여유를 가지면 충분히 즐겁고 자유로운 비건 라이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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