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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이선 프롬]에 나오는 화자인 ‘나’는 코베리정션에 있는 발전소 일로 파견되었다가 목수들의 파업으로 일이 지연되어 겨울의 대부분을 스탁필드에서 보내고 있는 엔지니어다. 이선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고 이선 프롬에 관한 단서를 찾고 그의 이야기에 관한 이 환상을 짜 맞추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고 프롤로그에 밝힌다.
‘이선’은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농부로 공과 대학에서 일 년간 공부하면서 물리학 교수와 실험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엔지니어와 화학자가 될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여러 불행 때문에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어머니가 병석에 드러눕자 친척 누나 ‘지나’가 병간호를 해주었다. ‘지나’와 애정 없이 결혼한 뒤 그녀마저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면서 시골에 발이 묶여 버렸다.
결혼한지 일 년이 안되어 병자가 많은 이 마을에서 조차 그녀를 주목하게 만든 ‘병’에 걸렸다. 이선은 아내가 말을 잘 하지 않는게 괴롭기도 하고 어머니처럼 이상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내의 조카 매티 실버가 지나를 돕기 위해 프롬네 오면서 아무 보수도 받지 않기로 했다.
매티는 천성적으로 집안일에 재능이 없었지만, 관찰력이 뛰어났고 정신적 교감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젊은 생명이 나타난 것에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의 짧은 공부가 상상력을 살찌우고 이면에 있는 막연한 의미를 깨닫기에 충분했다. 아내는 몸이 아파서 베츠브리지에 있는 친척집에 머물면서 의사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지나는 비싼 약을 잔뜩 걸머지고 돌아오기 일쑤여서 이선은 겁이 났다. 지나는 겨우 일곱 살 위였다. 이선은 스물 여덟살인데 그녀는 벌써 할머니였다. 데려다주고 싶지만 목재 대금을 현찰로 받으러 가야 해서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지나가 일박 여행을 떠나고 둘이만 남게 되는데, 매티는 지나가 아끼는 그릇을 깨뜨리게 된다. 매티가 의자를 난로 곁에 갖다 놓고 바느질감을 갖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이선이 아침에 꿈꾸던 그 장면이었다. 일상적인 일을 이야기하며 친밀한 사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잔병’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만이 ‘병발증’에 걸렸다. 아내는 의사가 ‘집에서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혀서도 안 된다고 여자애를 고용하라고 해서’ 한 사람 구했다고 한다. 지나의 베츠브리지 방문이 피어스 친척들과 짜고 그에게 하인을 고용하는 부담을 슬쩍 떠안길 계책을 세우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가 그를 지배했다.
친척들이 지나의 병이 어머니 간병을 하다 얻은 것으로 돈을 아까워한다고는 부끄러워서 차마 입을 떼지 못하겠다 하였다. 이선은 매티를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선은 혼란과 울분으로 뒤범벅된 감정으로 지나에게 헤어지는게 우리 둘 모두에게 좋겠다고 편지를 쓴다. 서부 지방으로 가서 혼자서 운명을 개척하는 데 두려울 것이 없지만 매티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매티가 추방당하는 장면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그는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매티가 작별 인사를 하며 편지를 하겠다고 하였다. 이선은 너를 위해 너를 보살피고 싶고 아플 때 외로울 때 같이 있고 싶다고 하였다. 매티는 잘 지낼 거라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은 절대 하지마라고 하였다. 지난겨울에 썰매를 타 본게 한 번 밖에 없었다며 썰매에 태워 내려 간다고 하였다.
에필로그에서 밝히는 진실은 놀라웠다. 이십 년 넘게 낯선 사람이 그 집에 발을 들여놓은 건 당신(나)이 유일해요 헤일 부인은 말한다. 지나 부인은 정성껏 매티를 보살피고 이선 씨를 돌보았다. 지나 부인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생각하면 그건 기적이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것 같았다.
저자인 이디스 워튼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행복하지 못했다. 남편은 신경 질환을 앓는 데다 정신병에 가까운 증세를 보였고 아내가 문학가로서 명성을 얻으면 질투심도 커졌다. 남편이 외도를 하자 이디스가 받은 충격이 컸다. 자전적 요소가 짙은 [이선 프롬]과 [여름]은 자매편으로 간주 되면서 쌍둥이로 불린다. 백 년이 넘은 작품을 읽으며 아픈 아내를 두고 젊은 여자를 마음 속에 품은 이선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인간의 욕망과 도덕을 생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