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책, 이게 뭐라고]는 2016년 12월, 새로운 소설을 발표한 작가 장강명은 팟캐스트 ‘이게 뭐라고’ 에 출연하게 되었고 시즌 2의 진행을 하며 책과 사람들을 만나며 읽고 쓰듯이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장강명의 에세이다.
요조와 같이 진행을 하는데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고 눈썹을 다듬어주고 연예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작심한 듯하다. 논픽션을 쓰기 위해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 취재를 하다 “이미 한국 독서는 생태계는 무너졌다. 얼굴 잘생긴 작가 책이 잘 팔린다”는 푸념을 듣고 마치 한국의 출판업이 사실상 ‘셀럽 비즈니스’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예의와 윤리는 폭력을 위한 두 가지 수단이다.
온라인 독서 토론도 나쁘지 않지만 오프라인 모임이 더 좋다.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 중심축이 되는 풍경을 상상한다.
나이나 재산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같은 동네 이웃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씩 모여 책을 놓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듣는 공간, 책을 읽고 의견을 차분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독거노인도, 미혼모도, 외국인 노동자도 모두 환영받는 자리p101
세상에는 책을 매년 700권씩 읽는다는 사람이 쓴 [1만 권 독서법]이라는 책도 있고, 3년 동안 1만 권을 읽었다는 또 다른 사람이 자기 독서의 비결을 설명한 책도 있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적정한 시간은 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분들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어쩐지 이성 교제 횟수를 자랑하는 고등학생을 보는 것 같다. 독서량을 내세우는 이들은 자기 독서의 질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닐까
저자가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선호하는 것이 의외였다. 전자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더 빨리 읽을 수 있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전자책 뷰어에는 글자 크기와 줄 간격 조절 기능이 있다. 위아래 촘촘하게 인쇄된 글을 잘 못 읽는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교차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짬짬이 읽는다.
요즘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내가 아닌 남의 이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책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는 가끔 거창하고 황당한 생각도 든다. 끝내주는 책으로 [블랙 달리아]를 소개한다. 저자가 배운 소설 작법 요령은 자신의 노하우인데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픈 욕망과 ‘그러다 한국에 갑자기 엘로이의 문학적 후계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하는 두려움이 사로잡는다.
말하고 듣는 사람들이 읽고 쓰는 사람들보다 현재를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읽고 쓰는 부류만이 수십 년, 수백 년 뒤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된다. ‘우리 시대의 어떤 작품이 고전이 될까’ 질문에 이르게 된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내 글 솜씨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함께 느꼈다. 세계문학전집에서 작가 연표를 유심히 살피며 그들이 의미 있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남긴 때를 확인해본다. <책, 이게 뭐라고> 녹음 2주년이 되면 하차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 우울증에 걸렸다. 여러 가지 이유 중 소설이 안 써져서였다.
내게 독서는 호흡이다. 나는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경고한 그 세계다. 나는 물을 벗어난 물고기들처럼 몇몇 용감한 선조들이 2,400년 전에 그 땅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깨달음을 얻은 어류가 되기보다 서툴게 걸으며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양서류가 되기를 택했다. 언젠가 우리는 보다 우아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상상한다.
길고 복잡한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이 두렵지 않다. 같은 꿈을 꾸는 나의 동족들, 읽고 쓰는 종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읽고 쓰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순수한 독서 공동체를 꿈꾸는 작가님의 즐거운 상상 잘 읽었습니다. 책, 이게 뭐라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