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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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옛날 추억이 있는 곳이어서 설레면서 읽었다. 이 소설은 1970년대 후반 그 무렵 춘천에서 청춘을 보낸 한 소설가의 회고담이다. ‘유신의 한중간으로부터 ‘5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이십 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김진호가 대학에 입학 후 시위에 참여하여 제적 처분과 기소유예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건과 두 번째로 입학한 대학에서의 시간을 그렸다. 얼룩의 팔 할 이상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가정환경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학교생활, 시작부터 쓸쓸한 이별을 예감한 한 여자와의 사랑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김진호는 법관이 되리라 청운의 꿈을 안고 첫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재학생 문예 작품 현상 공모에서 4.19세대(당숙)의 삶에 대해 쓴 소설이 당선되어 상금은 하숙집 정파(정신파탄)서당 선배들과 함께 광고 탄압을 받고 있는 [동아일보] 기자들을 격려 광고를 내는데 보탠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선배들과 시위에 합류하게 되면서 네 사람의 선배는 구속 후 바로 기소되면서 1년 반에서 2년 반까지 실형을 받았고 진호는 제적처분을 받아 고향인 명진으로 돌아온다.

 

일제강점기 증조할아버지는 친일에 힘입어 술도가 양조장을 일으킨다. 아들이 셋 인데 막내는 배다른 태생이다. 두 아들은 양조장의 누룩을 띄우고 술도가의 잡부를 감독했다. 1945년 여름, 38선이 그어지면서 두 아들은 잡부들 손에 몰매를 맞아 죽고 전 재산은 몰수 당한다. 막내할아버지가 항일 단체에 가담했던 일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버지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삼년 간의 전쟁에 명진이 수복되면서 잃었던 땅과 양조장을 되찾았다. 가네야마(金山)는 날로 번창하였다. 대의원 선거가 있을 때 아버지 김지남은 학력을 빼고도 감투가 아홉 개나 되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여 두 번이나 당선된다. 후보의 등록과 사퇴 과정, 선거운동, 당락의 변수는 흥미진진하다. 진호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것도 가네야마(金山)막걸리, 통대의원 아버지 덕을 본 것이다.

 

서울대에 합격하고 서울대를 졸업한 명진 유일의 시인인 당숙은 4.19때 다리를 다쳤다. 똑똑한 사람이 다리가 결딴나 고향으로 내려온 다음부터 제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당숙에게 진호는 능력이 된다면 글을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형의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했는데 그날 아침에 독재자의 유고를 확인한다.

 

진호는 일년 반 동안 칩거하다 춘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인간관계를 끊고 공부에만 전념하다 학보사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하여 활발하게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 찾아간 신입생 채주희에게 거절당하지만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주희의 엄마는 미군 부대 캠프 페이지 장미촌 출신이다. 주희는 미군을 아버지로 둔 혼혈인으로 아니노꼬이며 튀기라 말한다. 채주희는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나서 쏘아대는 낯선 시선들을 피해 늘 공중에 걸린 간판을 읽고 다녔다. 주희의 엄마는 딸에게 미국으로 갈 것을 애원하다 더는 상처 입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농약을 마셔 목숨을 끊는다.

 

동생 정혜는 가정교사를 하며 동네 선배인 박길우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해주다 합격을 하고 나니 정혜가 가르친 장군의 큰딸과 결혼을 하면서 배신을 해버린다. 드라마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는 듯 하다. 주희와 연애는 계속 되었지만 제대 두 달쯤 남았을 때 마지막 휴가를 나와 공항에서 아메리카로 떠날 그녀와 이별했다.

 

유안진 시인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에서 제목을 허락해 주었고, 저자는 돌아보면 얼룩조차 꽃이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 춘천에 감사와 헌사로 바친다고 하였다. 이 소설은 비틀거리고 방황하는 청춘에게 따뜻한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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