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네임 - 이름이 지워진 한 성폭력 생존자의 진술서 너머 이야기
샤넬 밀러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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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성폭력 생존자의 일상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기록이다. 원래는 판사에게 보내는 글인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를 재판에서 낭독한 뒤 나흘만에 조회수 1100만을 기록하게 된다. [에밀리 도는 여성 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명 중 하나다]

 

20171, 스물두 살이던 저자는 팰로앨토에서 살며 직장에 다녔다.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고, 길바닥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두 행인의 목격자도 있었고, 증거도 있었으며, 그 남자는 도망쳤지만 붙잡혔다. 너무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그가 사과를 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변호사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파티광인가요?” “바람을 피워본 적이 있나요?”“살면서 필름은 몇 번이나 끊겼나요?”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지만, 스탠퍼드대 장학생이자 수영 선수였던 터너 브록은 징역 6개월, 그리고 3개월의 감경받는다. 친구 맷은 에밀리라는 걸 몰랐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대학시절내 길잡이가 되어준 손때 묻은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꺼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의 어두운 일을 가지고는 당신 글을 쓸 수 없다. 당신 글은 당신 것만으로 쓸 수 있다.”(p348) 부록으로 수천만 명의 마음을 뒤흔들고 담당 판사를 파면시킨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내 진짜 이름을 되찾고 싶었다. 그 기억의 이름표를 떼고 싶었다. 이 책을 쓴 건 그래서다. 나의 진실을 털어놓기 위해. 나는 피해자이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누구도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

 

나는 대학을 마치고 나서 7개월 내에 성폭행을 당하고, 프로비던스에서, 그다음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법정 증언을 하다가 흐느껴 울고, 열두 장짜리 글을 써서 전 세계의 반향을 얻고, 키 큰 남자와 작은 개와 같은 집에서 살고, 2년 반을 글을 쓰면서 보내게 되리라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고통 속에서 자아를 만들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폭행은 이제 그 큰 이야기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건 내 인생을 이루는 사실의 일부였다.(p498)

 

캘리포니아 폴리테크 주립대 3학년인 동생 티파니가 연휴를 보내기 위해 집으로 왔고 티파니 친구 줄리아와 스탠퍼드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에 가게 되었다. 집에서 1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지루하고, 마음이 풀어졌고, 술에 취했고, 너무나 피곤하고 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기분이었다. 거기서 암전되고 필름이 끊긴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경찰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강간 키트 검사를 받고 옷을 벗고 사진을 찍고 아라레와 대변인 브리를 만나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이 책을 500페이지가 넘기도 하였지만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왜 그 남자에게 맞서 싸우지 않았어요? 묻기도 하고, 대학 다닐 때 남학생 사교클럽에 들어간 여자 신입생은 도살장에 들어간 양에 비유됐다. 만난지 몇 달 되지 않은 남자친구 루카스는 처음에는 당황하였지만 많이 이해해주었다. 재판이 이어지고 저자는 브록이 수업을 듣고 상담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면죄 선언으로 오해했다. 가해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의 피해자를 언제고 그녀가 반응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그 자리에서 멈췄을 거라고 대응했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사건 이후 일상이 어떻게 뒤죽박죽이 되어가는지, 치유가 실제로 가능한지,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자로만 정의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섬세한 에세이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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