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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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작가가 등단 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지면에 선보인 여덟 편의 단편을 소설집으로 엮었다. 책을 받아보고 표지가 참 예쁘다 느꼈고 제목만으로 에세인줄 알았는데 소설이었다. 8편의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솔직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좋았다.

 

밤의 물고기들- 한때 레즈비언이던 누나가 오픈리 게이를 감싸주며 집에 들인다고 할 때 만나보기 전에는 거부하던 내가 직접 만나보고 끌리는 감정은 무엇일까 누나는 익명으로 생식세포를 팔아 넘긴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그 사람처럼 자라나면 어쩌지,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면 그 잘못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 안에 함께 있었고, 빛이 머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채로 반짝거렸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18년 지기 친구를 멀다는 이유와 읽던 책을 완독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만남을 갖지 못해 마음이 쓰여 취중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영지와 나는 10년 동안 유지해 왔다. 조금 사귀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편안한 친구로 지내자며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에게 영지와 만남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한다. 위험에 처한 영지의 전화를 받고 부부는 함께 달려간다. 그녀(아내)는 자신이 내연녀이고 두 사람이 진짜 부부 같다고 느꼈다. 다시는 서로 만나려 하지 않을 애매한 사이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빛과 물방울의 색 - 죽어서 유령이 된 연인 이유영이 찾아온다. 이별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도 없이 갑작스럽게 연락두절이 되고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이별 의식인 것처럼 천진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슬퍼 보인다.

 

고요한 열정-누나 연수는 동성애자 서른세 살 동생의 가출로 행방을 추적하다 전 남자친구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게 된다. 연후는 연수가 태어나고 12년 만에 기적적으로 태어난 5대 독자의 외아들이며 장손이었다. 그런 아들이 여장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가문의 대는 끝장났다는 사실을 공표했을 때 부모님은 한 달 가까이 몸져 누었다. 동생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자의 우편함에 넣으려고 다시 찾아간 곳에 남자의 아들이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연후가 겪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인물들은 퀴어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자기기만과 자기혐오의 덫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지 보여준다. 작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직전까지 주인공의 성별을 고심했다. 작가가 그리는 남성 인물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남성성에 대한 분노와 체념과 여성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긍정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지금의 박선우는 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고 썼다. 퀴어의 사랑을 무겁지 않고 아름다운 필치로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을 제시한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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