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 사건은 공식 역사에서 오랫동안 공산폭동으로 왜곡되었다.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섬 공동체를 파괴시킨 진실은 은폐되었고 오히려 붉은 섬으로 낙인 찍혀왔던 슬픈 역사이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은 중단편으로 소드방놀이, 순이 삼촌,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아내와 개오동, 꽃샘바람, 초혼굿, 동냥꾼, 겨울 앞에서, 아버지로 구성되었다.

 

<순이 삼촌>

휴가를 받아 8년만에 제주 고향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 제삿날에 때를 맞춘 것인데 동네 어른들과 큰아버지와 4.3때 이야기를 하였다. 서울 집에서 집안일을 돌봐주던 순이 삼촌이 돌아가셨다.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아서 일 년을 못 채우고 고향에 내려온 것인데 내려온 지 한달도 못되어 일이 발생했다. 당시 일곱 살이던 내게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산자 색출을 하였다. 군인과 경찰 가족은 따로 앉히고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총을 겨누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할머니들, 군인들은 총부리에 등을 찔려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아낙네들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는 뒤꿈치에다 대고 총을 쏘아댔다. 죽은 사람이 오백명은 넘은 것 같았다. 순이 삼촌도 남편의 행방을 대라고 옷을 벗겼다는 것이다. 순이 삼촌은 시체 무더기 속에 파묻혀 까무러쳐 있어서 목숨을 구했지만 이미 30년 전에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죽은 사람들을 순이 삼촌네 밭을 비롯한 네 개의 옴팡밭에 늘비하게 널려놓고 매장을 하였다. 순이 삼촌은 한평생 피해의식과 결벽증, 환청,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삼십년전 살아나왔던 옴팡밭의 시체더미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끊고 만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 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 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뒤를 따랐다. ,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로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p60)

 

사또의 부정부패를 대신해 부형을 받아 돌팔매질을 당해 사망한 아전 윤관형 (소드방놀이), 불에 타버린 노형리에 사는 귀리집은 성을 쌓는 울력을 한다. 집과 양식이 불타고 시어머니가 폭도한테 죽창 맞아 죽은 다음에 폭도 가족이라는 누명에서 벗겨졌다. 아들 순원이에게 양식과 땔감을 챙겨 가는 도령마루 길에 순원 아방의 시체를 보게 된다(도령마루의 까마귀), 한날한시 떼죽음을 당하던 때 엄마가 토벌군과 일년 남짓 살림을 차렸던 고향에 돌아가기 싫은 문중호는 서울에 다니러 오는 엄마와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해룡이야기), ‘폭도에 가담한 아버지를 둔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한 작가의 등단작(아버지)

 

현기영 작가님은 1941년생으로 4.3 항쟁을 어린시절에 겪은 것이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말더듬이었고 우울증 같은 게 있어 탈출하고파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버티고 계셨다. 4.3을 떠나려고 소설을 쓰다보면 4.3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해 알게 해 준 순이삼촌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