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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아리엘 버거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엘리 위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 자신의 자전적 내용을 함께 녹여내 이 책을 썼다. 위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증언과 고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때 겪은 참극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전파했다. 저자는 조교로서 그를 돕고 학생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개인적인 일들에서 정치, 어린 시절, 구약 성경과 그 주석, 미술, 음악,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엘리 위젤은 15세이던 5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 중 90%는 사망했으며,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세 명도 살해되었다. 엘리와 아버지는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부헨발트 수용소로 끌려갔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사망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공부를 계속해 기자가 되었다. 1956년 그는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다룬 첫 번째 책<밤>을 출간했다.
아리엘 버거는 10대에 어머니와 재혼하게 되는 마티가 위젤을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흥분했었다. 당시에 위젤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학교로 찾아와 홀로코스트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위젤은 현대 문학을 강의하다가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였고 생존자들의 고민은 잊지 않고 있는 그 기억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였다.
엘리 위젤은 평생 사명의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언제나 똑같은 대답으로 교사로서의 사명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며,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갈등을 통해 건설적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광기에도 대단히 많은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적 문제는 파괴적 형태로 나타나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고 고립시킨다. 광기가 집단적으로 일어나면 이른바 정치적 광기가 되는데, 그러면 한 국가가 나아갈 바를 잃고 증오에 휩싸이고 만다. 우리가 광기에 대해 공부하는 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 한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 그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학자이지 작가, 사회활동가였으며 어떤 단체나 조직 혹은 후원자를 대표하지 않았다. 2006년 위젤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대통령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으로 주로 외교 무대에서 이스라엘 대표로 활약하게 된다. 자신은 교사이자 작가이지 정치가가 아니라고 하였다.
위젤 교수의 강의를 듣고 인생의 진로를 바꾼 학생들이 있었다. 트레이시는 금융업에 종사했지만 언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레바논과 시리아를 방문해 전쟁에 휘말려 고립된 난민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서방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269명의 학생들에게 인간성에 대해 가르칠 때 기억이나 추억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과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홀로코스트의 목격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열린 가슴>이라는 자전적 수필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정말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잔뜩 남아 있었다. 수많은 계획이 마무리 되지 못한 상태였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어려움도 많았다. 아직 가르치지 못한 내용과 배우지 못한 내용은 또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가.” 나의 기억을 보라는 엘리 위젤과 함께하는 수업을 통해서 우리는 힘들고 영향력도 없이 외면당하고, 차별과 배제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이들을 세심하게 신경 쓸 때 비로소 인류애가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