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디야!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7
브래드 멜처 지음, 크리스토퍼 엘리오풀로스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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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어린 시절 인도에서 자랄 땐 수줍음 많은 아이로 자랐다. 언제나 책을 끼고 살았고 운동은 소질이 없어서 방과 후엔 곧장 집으로 가곤 했다. 학교에서 읽은 샤라반 쿠마르라는 남자를 본 받기로 하였다. 샤라반은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는데, 부모님이 너무 늙으셔서 여행하기 힘들어지자 등에 지고 다닐 정도였다.

 

정치 지도자였던 아버지처럼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갔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 당시엔 막강한 힘을 가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기차 1등석에 앉은 간디에게 승무원은 자리를 뜨라고 명령했다. 그러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고 움직이길 거부하였더니 기차 밖으로 밀어 내고 짐도 승강장으로 던져 버렸다. 마차를 탈때도 운전기사는 따귀를 때리고 끌어내리려고 했다. 그때 간디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싸워야만 했다.

 

인도인들이 그 지역에서 더 활동적이 되도록 돕기 위해 <나탈 인도인 회의>를 구성했다. 간디는 정부에 대해 글을 쓰고,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게 왜 좋은지 썼다. 때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간디가 좋아하는 사상가들의 기사까지 실었다.

 

사티아그라하를 고안해서 투쟁을 했는데 경찰이 수색해 나서고 간디를 두 달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14년에 인도인 구제법을 통과시켰다. 인도는 영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영국법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파업을 했다. 정부에 대항하는 간디를 영국인들은 다시 감옥에 가두었다. 영국은 인도를 떠나려 하지 않았고 새로운 소금법을 통과시켰다. 인도인들은 스스로 소금을 만들거나 팔 수 없다는 법이다.

 

 

 

간디가 60세가 되었을 때 400킬로미터 가까이 걸었다. 한 달 동안 날마다 15킬러미터씩 걸었다. 아라비아해 접한 단디라는 마을에서 파도가 남겨 놓은 소금을 한 줌 집어 들었다. 또 다시 체포되었다. 하지만 수천 명의 인도인들이 같은 법을 어겨 주었다. 몇 줌의 소금이 국민들을 뭉치게 했고, 영국이 얼마나 형편없이 대하는지 전 세계가 깨닫게 했다. 간디는 작고 깡마르고 볼품 없고 수줍음도 많았지만 결코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러 해 동안 투쟁을 하였다.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사람들은 간디를 마하트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건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강인함은 몸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크기에서 비롯된다. 특히 불공평에 맞서고자 할 때는 사랑을 내보여야만 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꼭 도와주고 그들을 어깨에 메고 가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 그들을 위해 크게 외치라. 스스로 신념을 지키자.

 

나는 간디야. 나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세상을 뒤흔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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