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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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휴가를 즐기러 간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에서 소설 원고를 발견한 안느 리즈는 156쪽에 적혀 있는 주소로 원고를 보낸다. 소포를 받은 원고의 저자 실베스트르가 33년 전 캐나다 몬트리올 여행하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스물세 살에 원고를 잃어버려 몇 달 동안 찾아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첫 원고에 안녕을 고해야만 했고, 연이은 실패로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어 버린 원고가 돌아 왔으니 기쁨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인명과 지명만 실제와 다를 뿐 거의 대부분 진짜라고 한다. 모두 편지 형식인 서간체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한 것은 2016년인데 메일 전화가 있지만 수기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데 있다. 실베스트르는 마지막 원고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안느 리즈는 원고를 마무리하라고 조언하고, 어쩌다 캐나다에서 프랑스 휴양지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아내려 한다.

 

안느 리즈는 호텔방의 숙박객을 조사하여 원고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편지로, 직접 만나 원고를 얻게 된 사연을 들으며 특히 뒷부분을 쓴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호텔에 노트가 있어도 들춰보지는 않고 데스크에 알릴 생각도 못한 사람, 호텔에서 머물면서 원고가 없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원고를 잠시라도 소유했던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메오는 용기를 얻어 짝사랑하는 그녀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다. 빅토르는 직업을 바꾸게 되었고, 나이미는 10대에 성폭행으로 임신과 출산 입양한 아들을 만날 용기를 얻었다. 안느 리즈 친구인 미가는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다비드는 10살 연상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지만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윌리엄은 영문학 교수 재직중에 포커 동아리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가정이 파탄이 되어버렸고 상처를 받은 딸은 아빠를 외면한다. 실베스트르는 첫 사랑을 만나게 되고 소설을 출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안느 리즈의 직업이 궁금했고 짐작도 못했던 반전이었다.

 

저는 삶의 단편들을 결코 기억 저편에 묻어두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야만 현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글이 서간체지만 지루하지 않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 깊어지는 우정도 있고 약간의 오해도 보이지만 원고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맺고 삶이 변화하는 모습이 인간미가 넘친다. 나도 어릴 적 펜팔을 하던 때를 떠올려지고 그 시절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베스트르가 원고를 잃어버린 건 1983년이고, 우리가 따라 잡은 여정은 1996년까지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얼마나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당신도 알겠지? 보다시피 우리의 결의는 빈틈없이 확고해. 그러니 확신을 갖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해.p146

 

소설이 당신 손에 들어간 걸로 보아 아무래도 그녀의 과거의 흔적을 청산하고 살아가는 모양이군요.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난다며, 우리의 논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독서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제게까지 전염됐다고 전해주십시오. 무엇보다 저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바위에 붙어 있는 고둥처럼 이곳 수감자들에게 들러붙은 만성적인 우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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