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302/pimg_7583281442467295.jpg)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십분의 일을 냅니다]는 드라마 피디 일을 그만두고 와인 바를 차리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하고 싶어 했던 피디 일이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교통사고가 나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퇴사를 생각하였다.
두달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보니 진짜 백수가 되었다. 대낮인데도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에 의아하다가 ‘아로파’ 모임을 생각했다. 대학 시절 스터디 중 피디 지망생들만 모인 그룹이 있었는데 성격이 잘 맞아 오랫동안 함께 공부했고 채용 정보를 주고받으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였다. 어느 형이 화제를 전환했다. 다큐 기억나지? 거기 ‘아로파’라는 게 나오잖아. 교통사고가 나고 회사에 복귀 해 퇴사를 할락 말락 하던 시기였다.
일종의 경제 공동체인데 2012년 SBS 창사특집 대기획 ‘최후의 제국’ 다큐멘터리에서 아누타섬에 사는 부족 이야기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부족은 인구가 적고 서로 협동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사랑, 협동, 공생 등을 아우른 단어가 바로 ‘아로파’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302/pimg_7583281442467296.jpg)
을지로3가역 근처 카페에 5명이 모여서 모임의 계획을 세웠다. 최후의 제국에 나오는 부족들처럼 조직을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영향을 덜 받는 우리만의 마을을 만들어 이왕이면 빨리 많이 벌 수 있는 드립 커피 전문점 카페 창업을 하기로 꿈과 희망이 컸다. 조직의 이름은 ‘청년아로파’였다.
임대 계약부터 순조롭지 않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인테리어도 직접 하였다. 공사를 하면서 무너질까바 벽을 밀어도 되는지 고민하고 전문가가 올 때까지 마음을 졸였던 일이 글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며칠 동안 두꺼운 고전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읽으니 글이 너무 유쾌하게 잘 읽혔다. 가까우면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를 때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데, 가게를 만드는 여정도 여행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선 돈이 별로 없다는 점이 그랬고, 돈이 없다 보니 늘 발로 뛰면서 매일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점도 그랬다.p124
정관을 만들고 룰을 정하기로 하였다. 각자 월급의 10%를 월 회비로 내자. 백수는 최소 회비 5만원으로 정했다. 3년 가까이 청년 아로파가 운영하는 캐주얼 와인바 ‘십분의일’을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멤버 섭외를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술이 몇 잔 돌면 거창한 비전과 지난 이야기들을 설명한다. 그러다 월급에서 10%를 내야 되는 거야. 언제인지는 모르나 수익이 나면 엔빵할 거고 근데 너 한달에 얼마 번다고 했더라?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 그다음 모임에 볼 수 없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302/pimg_7583281442467297.jpg)
가게 이름을 정하는데 ‘약간 인더 스트리얼풍의 회색빛이 도는’ 긴 이름은 면했다. ‘난파선’과 ‘다락’도 탈락이었다. 열명이서 월급의 십분의 일씩 모아서 하는 곳이니까 ‘십분의일’로 정했다. 법을 전공해서 중간고사에 백지를 낼 수를 없어 ‘죄송합니다 교수님 다음에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적고 나갔더니 교수님은 “이런 친구들은, 그냥 일찌감치 나가서 장사나 하는 게 나아요.” 했다는 교수님이 이 사실을 알면 뿌둣해하실까 궁금하다. 오픈 4일만에 첫 손님이 오고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을지로 와인’을 검색했다고 한다.
십분의일은 월급의 10%를 월 회비로 내고 있어서 십분의일이라는 가게 이름이 지어진 것이지, 멤버의 숫자와는 관련이 없다. 시작 당시 7명이었다가 오픈할 땐 10명이 되기도 했고 9명이 다시 10명이 되기도 했다. 청년아로파에서 운영 중인 두 번째 사업장 <빈집:비어 있는집>이 가게 바로 옆에서 와인을 판매하고 있고,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아무렴 제주>가 있다. 와인바 ‘밑술’이 청년 아로파 시즌2의 첫 번째 사업장이라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해낼 수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