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태어난 금수현 하면 그네로 유명한데 나는 미처 몰랐다.<세모시 옥새 치마 금방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가사를 들으니 노랫말은 많이 들어봤다. 지휘자로 유명한 아들 금난새는 자신이 태어난 1947년 무렵에 작곡을 하여서 [그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한다. 작가였던 외할머니인 김말봉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곡을 붙임으로 그네 타는 여인으로 어머니를 염두에 두었던 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을 펴낸 이유는 올해가 아버지가 세상에 오신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19623월부터 6월까지 일간지에 짧은 칼럼을 연재한 것이 책으로 나왔다. 그 책에는 글 100편이 실려 있지만 75편을 추렸고 25편은 자신의 글을 실었다. 1악장부터 제3악장까지의 글이 아버지가 쓴 글이고, 4악장의 글은 저자가 쓴 글이다. 음악가답게 악장으로 나간다. 금난새가 지휘하는 단 한 권의 思父曲이다.

 

 

 

일본 경시청에서 영국의 소매치기 왕을 초청하여 귀하의 기술을 이 자리에서 보여줄 수 없는가 물었다. 소매치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말하고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시계, 만년필, 수첩 등을 꺼냈다. 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의 것이라니 거짓말 같은 실화가 아닐 수 없다. 심리를 노리는 소매치기 조심해야겠다. 미국인이 한국인에게 물었다. 귀국에서는 어떤 사람을 존중합니까 노인이라고 대답하였다. 미국은 어린이를 존중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어린이를 더욱 소중히하며 더구나 매질은 일절 삼가야 할 것이다.

 

얘야, 선 김에 맥주 하나 가온나.”

2016년독일 베를린에서 세계 최대의 화폐 박람회인 머니 페어 2016’이 열릴 때 옛날 아버지에게 들었던선 김에라는 말이 생각났다. 행사에 참석해 연주만 하고 오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간 김에현지에서 멋진 음악회를 하고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연주할 때 청중에게 조금씩 돈을 모아 유럽 난민들을 돕는 자선 콘서트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선 김에간 김에로 이어진 셈이다.

 

 

 

한글전용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창씨개명 일제강점기때 당했던 박해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서인지 해방 이후 성을 김씨에서 금씨로 바꾸고, 자식들 이름을 전부 한글로 지었다. 아버지는 탁구의 상당한 실력가였고 형제들과 자주 탁구를 치는데 공격은 하지 않고 수비만 했다. 이기기 위해 탁구를 친 게 아니라 행복을 위해 탁구를 친 것이다. 아버지의 넉넉하고 여유 있는 태도에 영향을 받았고 음악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노련한 연주자가 먼저 수비하듯 상대방을 받아주고 배려해주면 자연스럽게 앙상블이 이루어진다.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도 자주 하셨지만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늘 챙겨주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웃음도 많았지만 눈물도 많았습니다.(p268~269)

 

 

 

매년 포스텍에서 음악을 부전공 한 과학도들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일에 많은 관심을 보인 사람 중 한명이 고려제강 홍영철 회장이다. 그는 야심작으로 고려제강 자리에 ‘F1963’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처음 공장을 지은 해가 1963년이다. 회사 역사를 간직한 낡은 공장을 새롭게 꾸며 부산을 상징하는 문화 공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음악가 중에는 유머와 위트가 뛰어났던 사람이 많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 작곡가 하이든이다. 금난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하이든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하이든보다 더 유쾌하게 살다 간 분이라고 말한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집 앞 계단에 도,,,,솔 선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센스 넘치는 이벤트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다섯 형제들에게 골고루 선물을 주고 간다고 믿었다. 지금도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 장면이 떠오른다고 회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