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쓴 에세이는 처음이다. 맨부커상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멋진 그림 컬렉션이다. 이 책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 화가들의 그림에 얽힌 흥미진진한 기록을 소설 처럼 읽을 수 있다.

 

서문에는 줄리언 반스의 어릴 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이어서 예술을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미술품으로 세 점의 유화가 걸려 있었고, 1964, 대학에 진학하기 전 파리 루브르 미술관을 가면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5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미술 작품을 봤고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을 찾았을 때 예전에 처음 본 모로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마음을 다 잡았는데 다시 봐도 50년 전과 다름이 없었다. 많은 작품을 봤는데도 모로 그림이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진다.

 

플로베르는 한 예술 형식을 다른 예술 형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명화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브라크는 우리가 그림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야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이르기란 요원한 노릇이다. 우리는 뭐든 설명하고, 의견을 내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구제 불능 언어의 동물이기 때문이다.P16

 

 

 

맨 처음으로 소개 된 재난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 제리코가 나온다. 거센 바람에 프리깃함에 고래 떼가 에워쌌다. 세네갈 탐험대 중 한 척이었고 서툰 항해 탓에 배들이 흩어지고 말았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지만 배가 기울었고 썰물이 질 때 좌초했다. 식량들은 싣지 못하고 물에 빠뜨리거나 잊어버리고 뗏목에 사람을 태우지만 물 밑으로 70센티미터 가라앉았다. 파도에 부딪치고 폭풍우가 일어났다면 사람들의 비명과 파도가 뒤 섞였다. 일부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확신하고 포도주 통을 깨서 술에 취하고 이성을 잊고 최후의 위안을 얻기로 작정했다. 서로 물어뜯긴 사람들이 속출했다. 밤새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날치 떼가 뗏목 위를 넘어가다가 사람들의 손과 다리에 걸려서 날치를 손질해서 먹었지만 극심한 허기가 져서 인육을 끼니로 보충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헉 소리가 나왔다.

 

범선이 지나가면 옷을 흔들어 구조를 요청했지만 모르고 지나갔다. 마지막까지 프리깃함에 다섯 명이 남았다. 제리코는 사비니와 코레아르의 이야기를 읽고 사건 기록을 수집하고 메두사호의 재난에서 뗏목의 축적 모형을 만들게 하고 그 위에 생존자들의 밀랍 모형을 만들어 얹었다. 원본 사진이 있다면 부분 장면에 대한 설명도 해 두었다. <메두사호의 뗏목>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들라크루아는 일기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감정들을 달래는 방식이라고 썼다. 일기는 낭만주의 화가의 일기에서 기대할 수도 있을 내용을 담고 있다. 좋은 글은 매일 기록하는데 나온다는 말과도 같다. 팡탱-라투르의 네 점의 그림은 서른네 명의 남자가 나오는데 스무 명은 서 있고 열넷은 앉아 있다. <식탁 모서리> 부분 장면 왼쪽부터 베를렌, 랭보, 레옹 발라드가 있다. 표지에 나오는 아름다운 미소년 랭보는 수염을 기른 사람들 틈에서 아기 천사처럼 턱을 괴고 우리의 왼쪽 어깨 너머를 바라본다.

 

이것은 예술인가?에서 <죽은 아빠><운동 실조증에 걸린 비너스> 그림이지만 보는 것도 힘들다. 100년 전 의사이자 조각가인 프랑스의 폴 리셰가 시체의 조소를 떴다. 마르고 늙은 알몸의 여자 골격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류머티즘성관절염으로 죽었다고 라벨은 알려준다. 화가 프로이트가 있었나 착각하였다.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언제나 즐거운 실내에서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우화도 일반화하는 사람도 아닌 순간의 현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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