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을 많이 들어봤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읽었을까 안 읽었을까 기억이 안 난다. 열여덟 살의 대학생이 두세 달 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그 당시에 천재작가로 사강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작품이 나온지 40년이 되었는데 사강이 타계 한지 15주기를 맞아 김남주 번역가의 번역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사강이 [슬픔이여 안녕]을 쓰던 때를 돌아보며 쓴 사강의 에세이도 같이 실려 있다.

 

그해 여름 슬픔, 전에 없던 감정, 권태와 후회를 알기 전까지 열일곱 살이던 나는 행복했다. 아버지는 마흔 살, 십오 년 전부터 홀아비로 지내오고 있었다. 이 년 전 기숙학교에서 나오면서 아버지가 여자와 동거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육 개월마다 여자를 바꾼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경박하고 사업적으로 유능하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덕 의식이 없는 아빠지만 나에게는 선하고 너그럽고 유쾌하고 애정이 가득한 좋은 친구였다. 아버지는 동거녀 엘자 마켄부르와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도 괜찮겠는지 물어왔다. 지중해의 해안가에 하얀 별장을 빌렸다.

 

우리의 몸이 건강한 황금빛으로 그을리기 시작했다. 엿새째 되는 날 시릴이라는 남자를 보았다. 법대생이며 자기 어머니와 옆 별장으로 휴가를 보내러 왔다. 엄마의 친구인 안 라르센이 별장으로 온다는 말을 듣는다. 안 라르센은 부녀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달랐다. 세련되고 지적이고 신중한 사람들과 사귀었고, 우리의 경박한 취향 때문에 아버지와 나를 경멸했던 것 같다. 현재 애인인 엘자의 의향도 묻지 않고 초대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별장을 두 달간 빌렸지만, 안이 도착하면 휴식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연애 행각을 과시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연애를 숨기지 않았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파티에도 데려가고 파티가 끝나면 아버지는 집에 데려다 준 다음 대개는 여자 친구를 바래다 주러 갔다. 엘자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안보다 열세 살이나 어렸다.

 

 

 

어느 날 파국이 닥쳤다. 모두 칸에 가서 저녁나절을 보내기로 결정 했다. 카지노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안과 단둘이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둘은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을 한다. 실망한 엘자는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안은 시릴 청년을 만나지 말라고 한다. 열일곱 살이고 현재는 공부만 해도 오후가 모자란다고 충고한다. 세실은 황금빛 해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시릴을, 요트의 부드러운 출렁임을, 시릴과 나누는 입맞춤의 느낌을 떠올렸다.

 

안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 우리의 앞길에서 떼어놓아야 한다는 생각, 나는 조금 전 점심 식사를 거르며 이를 악문 채로 앉아 있던 것을 떠올렸다. 원한으로 깊이 상처받은 나, 내가 나 자신을 경멸하고 조롱하면서 느꼈던 감정, 그렇다.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안이 미웠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행복과 유쾌함, 태평함에 어울리게 태어난 내가 그녀로 인해 비난과 가책의 세계로 들어왔다.(p79)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세 사람의 삶은 파괴되고 아버지는 몸만 컸지 아이라면서 엘자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세실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대학 입학 자격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데 온통 아빠의 재혼을 막는 일만 생각했다. 안은 마지막으로 고통이 뚜렷이 새겨진 얼굴, 배신당한 사람의 얼굴로 나가서 사고가 잦은 곳에서 오십 미터 아래로 굴렀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례도 치루고 세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한 달 동안 아내를 잃은 홀아비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둘이서만 살았다.

 

, !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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