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내내 추리소설만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시선을 바꾸어야 할 때 구디 얀다르크를 만났다.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 이 소설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버스안에서 젊은 사람과 노인의 언성이 높아지고, 사이안은 한마디 거들다 욕만 먹고 마음만 심란해진다. 그녀의 스무살 그때로 돌아간다.

 

IMF가 오면서 아빠가 자살을 했다. 엄마는 세 식구가 함께 다니던 교회에 계속 나갔다. 위로해줄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 자살은 대상이 자기 자신일 뿐,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은 날 교회를 끊었다. 엄마는 일년만에 우울증을 박차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자살을 선택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엄마가 한 사업은 다단계였다. 이사할 때 손 없는 날미신이 인도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99학번. 언론은 세기말 학번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국어국문학과를 전공 한거와 달리 IT 업계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회사에 쉽게 적응할 수 있던 것은 전공지식보다 불면증 덕분이다. 정기 PM 작업에 자원하여 밤샘하면 추가 수당을 받았다. IT 기업의 실무 교육은 도제식으로 이루어지기에 첫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 이안의 사수 천 대리는 숙취 때문에 늘 눈동자가 흐리고, 늦게 출근해서 오전 내내 졸기 일쑤다. 회의가 있다며 없어졌다가 사우나에 다녀온 적도 있다. 소설에서 천 과장을 거머리로 표현한다. 스물여덟에 대리가 되었다. 축하해줄 가족도 남자친구도 없어 서글픔이 몰려왔다.

 

세상은 거머리 천지다.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흡혈한 피로 산업이 돌아간다. 사람의 불안감을 빨아먹고 사는 보험, 상조, 종교 음모론자, 언론인, 유사과학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정부지원금에 빨대를 꽂아 해마다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스타트업도 수없이 많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가족이나 연인의 사랑을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다.P134

 

대기업에 다니는 자부심을 느낀 것은 전세자금 대출이었다. 근속 이 년차에 받을 수 있는 덕분에 원룸 옆의 오피스텔을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융자금 상환 완료 전에 퇴직하면 미상환 잔액을 상환해야 한다. 퇴직원을 제출했지만 인사팀장과 면담을 하고 퇴사 대신 부서 이동을 제안 받았다.

 

5년만에 첫 회사를 그만두고 성 과장의 제안으로 회사를 이직했다. 제시된 조건은 스타트업에 이전 직장 수준에 맞춘 연봉, 실장급 대우로 지분까지 보장받는 내용이었다. 회사가 문을 닫고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중견 IT 업체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가디와 구디의 회사를 여럿 거쳤다. 너 말고 일할 놈 널렸다며 일상처럼 가해지는 인격모독, 회식 자리마다 벌어지는 성폭력, 숫자로만 존재하는 휴가. IT 노동자를 위한 노조 결성을 하였다. 어느새 그녀는 구디 얀다르크가 돼 있었다.

 

구디 얀다르크가 된 이유는 구디는 구로디지털의 약자이고, 주인공 이름인 이안을 사람들은 야니라고 불러서 얀이 되어 구디 얀다르크가 된 것이다.

 

내 꿈에 나와 나를 부추겼던 잔다르크가 원망스럽다. 그녀는 왕을 옹립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왕 역시 교황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나 역시 노조를 만들었지만, 정치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숙청당했다. 그들 역시 명문대를 나온 운동권 출신 기득권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잔다르크는 마녀재판 혹은 이단재판에 희생됐고, 구디 얀다르크는 정치적 이유로 탄핵당했다. 내가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혹시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었을까?p236

 

소화계통이나 두통, 알레르기 문제로 병원을 찾는 노동자는 휴식을 취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걸 의사도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책은 약자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IT 종사자가, 여성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을 끝으로 책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