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공포증
배수영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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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몽실북스에서 배수영씨가 쓴 추리 소설이 출간되었다. 매디컬 미스터리 [햇빛 공포증] 제목 만큼 강력하고 스릴 있는 이야기다. ‘검은 호수 밑바닥에 묻어둔 과거가 다시 날 찾아왔다메시지가 궁금하여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와 가족, 부모 형제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하얀 방. 내 이름은 김한준, 서른 다섯, 직업은 경비행기 조종... 남자는 의식을 잃으면 안 돼 하며 기운을 차리려 애를 쓰고 있다. 희우에게 프로포즈를 하려고 만나러 가는 중 에레베이터에 갇히게 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발작 증세를 보이며 실신했다. ‘햇빛공포증이라는 병이라고 한다. 빛에 노출되면 몸에 경련이 오고 구토를 하거나 근육이 마비되기도 하는 병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담당의 김주승 최면 치료를 통해 한준의 과거인지 최면제에 취해서 본 망상인지 모를 장면들이 떠오른다. 한준의 입원을 동의하는 사인과 그녀의 이별 통보는 음모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누가 그런 짓을 했나?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괴물과 직접 대면 하고자 최면 테리피를 한준의 요구로 매일 감행되었다. 최면 상태에서 늘 같은 소년을 보았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어서 스테파노 신부가 입양하여 키워 주었다. 빛에 민감해진 한준은 햇빛뿐 아니라 인공조명도 꺼리게 된다. 빛에 노출되면 동공이 조여지면서 혼나는 어린아이처럼 몸이 움츠려들곤 한다. 소년의 겁에 질린 눈동자, 소년의 엄마가 건네던 마름모꼴의 알약, 넌 누구냐..

 

천사가 소년에게 속삭인다. “넌 그때 죽었어야 해.”강력한 진정제와 사투를 벌이던 한준이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벌떡 일어났다.“꿈이 아니라 기억이었어,”(p81)

 

상담치료사 권소영 선생은 김주승이 치료가 아닌 실험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김주승은 김한준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을 만들어 놓았다며 권 선생의 개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한준의 빛에 대한 공포는 창고에 감금되어 문이 열릴 때 들어온 빛을 구타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구타하려는 그 사람이 두려웠던 것이다. 유년기에 학대 받은 것을 잊고 살았는데 엘리베이터 사고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견뎌 오면서 살기 위해그 기억을 모두 지워 버렸던 것이다.

 

어린 한준이 일년 동안 복용했던 마름모꼴 약은 당뇨약, 협심증약, 여성호르몬. 어떤 종류의 약이든 열 살 어린애가 먹을 수 있는 약이 아니어서 (섭스턴스 어뷰즈) 약물 학대였다. 영준의 엄마가 영준이를 가졌을 때 초기 임신인줄 모르고 불면중이 심해서 자기 전에 습관처럼 마시곤 했다. 임신 중 알코올 섭취로 인해 태아에게 신체적 기형이나 정신적 장애가 나타나는 선천성 증후군 [태아알코올 증후군]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준이 근무하는 G 비행학교에 성 루시아 병원의 로고가 찍힌 진단서가 도착하고 파일럿 자격을 박탈할 수 밖에 없다. 주승은 한준의 사촌 동생 김영준이었다. 한준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살아 온 영준은 복수할 날만 기다리며 그의 주변을 맴돌다 엘리베이터 사고를 목격하게 되고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이송하게 된 것이었다.

 

최면 도중 주승의 뜬금없는 질문을 들은 한준은 정신이 들었다. ‘이건 최면 치료가 아니다. 그냥 최면이다. 내게 이상한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게 분명해주승은 주사를 투입하여 한준의 기억을 조종 했던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뒤엉켜 몸 싸움을 하였다. 서로를 알아보고 진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이 불행의 시작은 부모님, 영준의 엄마기도 한 큰 어머니의 질투와 연민이 빚어낸 결과이다.

 

매일 꿈속에서 차가운 호수로 뛰어든다. 입수와 동시에 혈관이 조여드는 고통을 느낀다. 검은 승용차가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다. 피가 날 때까지 창문을 두들긴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내게서 고개를 돌린 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덤덤히 앉아 있다.(P257)

 

어린 영준은 더 이상 희망, 우정, 신뢰 따위의 긍정적인 가치들을 믿지 않았다. 그런 단어들을 들을 때면 영준의 눈가에 조롱과 조소가 차오르곤 했다. 지구상에서 만 년 전에 끝난 빙하기가 영준의 세계에서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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