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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나는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저자 최태성 선생님의 말이다. 시험 치는 것만 아니라면 역사책을 읽으면 재미가 있다. 올 초만 해도 한국사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만 보내게 되었다. 문제집을 풀다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해설을 찾아 보듯이 역사는 삶의 해설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역사의 쓸모를 읽어 보면 좋겠다.
고려시대 귀족들의 고급 스포츠는 매사냥이었다. 사냥용 매가 비싸서 새끼일 때부터 훈련하며 길렀다. 오랫동안 길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귀할 수밖에 없었다. 매 주인은 자신의 매에 하얀 깃털을 매달아뒀다. 자기 이름을 써서 달아둔 거였다. 이걸 떼면 도둑질인데 이 이름표를 뭐라고 불렀나? 최태성 선생님이 자주 내는 퀴즈란다. 답은 ‘시치미’이다. 매가 비싸니 어떤 사람들은 시치미를 떼어내고 마치 그 매가 자기 것 인양했다. 시치미를 떼고도 모르는 척했다. 시치미 떼지 말라는 말이 유래된 것이다. 와우 재미있다.
저자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일생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의 삶에 좋은 영향과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공부이다.
조선시대 후기 정약용은 정조가 키운 학자이다. 조선은 성리학인데 정약용의 집안은 천주교였다. 정조는 신하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지시를 내렸는데 정약용은 정조의 편지를 받고 물러났다 다시 불러 준다고 하였는데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정약용은 충격에 빠졌고 신유박해로 천구교인이 처형당하고 정약용은 유배를 간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500여 권의 책을 쓰고 후학에 힘을 썼다.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해도 책은 읽을 수 있으니까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이 되려면 오직 독서 한 가지 일뿐이다”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여생이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나 삶의 마지막 투쟁이었을 것이다.
선덕여왕은 위기 상황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어 올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높이가 80미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탑이다. 아파트 30층에 달하는 높이다. 몽골 침입 때 황룡사가 불에 타지 않았다면 황룡사 9층 목탑은 현재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을 것이다. 9층 목탑에는 층마다 신라를 괴롭힌 주변국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일본, 당, 오월, 탐라, 백제, 말갈, 거란, 여진, 고구려 왜 주변 나라의 이름을 탑에 새겼을까요? 언젠가는 신라의 발아래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p104
대동법에 인생을 건 김육은 호서대동법이 시행되고 어떤 말을 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다. 인터뷰 같은 건데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말에 김육은 답한다.“나는 학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줄어서 너무 기분이 좋다.”백성이 배고픈데 무슨 학문이 성리학, 양명학이 무슨 소용인가, 백성이 잘살면 최고지, 이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저자는 꿈은 행복해지려고 꾸는 건데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했다.
유명한 이항복 직계 후손인 이회영은 부와 권력이 엄청났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이 되는 재산을 들고 서간도로 가서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1932년 예순여섯의 나이에 상하이에서 붙잡혔다. 모진 고문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나도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 회고록《서간도 시종기》를 읽어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어우동’의 이야기도 마음이 짠해진다. 경주 최부자댁은 200여 년 동안 12대에 걸쳐 만석꾼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대단하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고 하는데 그 비결이 뭘까? 이 집에 가훈을 보면 알 수 있다.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변변찮으면 부자 옆에 사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 데도 챙기지를 못하느냐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로 손색이 없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말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역사에 대해 심층 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