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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82년생 김지영]소설 조남주 작가의 신작 사하맨션을 금방 읽었다. 소설처럼 한 도시를 기업이 사들인다면 시민들의 삶은 어떨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기업의 인수로 탄생한 작은 도시국가가 있다. 밖에 있는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누구도 나가려 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이곳을 사람들은 타운이라 부른다. 팔순을 바라보는 회장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자신은 사업가일 뿐이라며 도시를 인수한 것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타운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타운에는 주민권을 가진 또는 주민으로 불리는 L과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통과하면 L2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타운에 남은 원주민과 그런 L2들이 양육의 의지 없이 낳은 아이들이다. 이들은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다. 2년 동안은 걱정 없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이들을 원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창고, 청소 현장같이 힘들고 보수가 적은 일이다. 그리고 주민권은 물론 체류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사하맨션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하’라 불린다.
총리들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절차도 없이 제정하였으며 휴일에 세 사람 이상의 성인이 모임을 가질 때에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제약도 많은 타운에 총리단은 무분별한 밀입국을 막기 위해 주민 자격을 두기로 결정했다. 원주민이 떠난 주거지들은 철거 되었지만 사하맨션의 공사만 자꾸 연기되었다. 수도와 가스는 끊겼지만 앞마당 수도와 옥상의 태양광을 이용해 쓰고 있다.
본국에서 진경의 엄마는 이사업체에서 일하다 자살로 판정이 났지만 동생인 도경이 자살이 아니라고 사장을 살인하고 남매는 숨을 곳을 찾던 중 수십년 전에 독립했다는 남쪽 어딘가의 도시국가, 섬처럼 고립된 어느 맨션을 생각한다. 사하맨션 정말 거기에 있었다. 진경은 L2도 못 되었다. ‘사하’라 불리었다.
소설의 시작은 도경과 연인 사이던 타운의 소아과 의사 ‘수’가 시신으로 발견되고 도경은 자취를 감춘다. 경찰은 수의 죽음이 강간, 살인에 의한 것이라 발표하고 도경을 지목한다.
214호 사라의 엄마, 연화는 타운 주민 자격을 얻지 못한 원주민이었는데 열심히 일을 해도 가족을 돌볼 수 없었다. 직업소개소 소장이 소개해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사라를 임신한채로 도망 나왔다. 사라는 한쪽 눈이 없는 채로 태어났고 열 두 살에 엄마가 죽었고 열일곱 살부터 술을 파는 바에서 일했다. ‘이아’라는 아이가 실종이 되었는데 그 엄마가 이상하고 소문도 잠잠해 진 것이 진경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자식을 팔아먹지 않았어요. 이아를, 우리 이아를 팔아먹지 않았어요.”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던 말일 것이다. 한 번도 말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아 엄마는 코를 한 번 크게 훌쩍이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위로는 받았어요. 위로라고 생각하고 받았어요. 위로와 배려를 받고 나니 그걸 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따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팔아먹은게 됐어요. 그러니까 진경 씨, 살면서 혹시 위로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받지 말아요. 위로도 배려도 보살핌도 격려도 함부로 받지 말아요.”p163
305호 L2로 태어난 은진은 공공 보육원의 원아였다. 보육사의 꿈을 키우며 사하맨션 아이들을 돌본다. 311호 꽃님이 할머니는 본국에서 조산사였다. 자격증이 있는건 아닌데 젊은 산모의 낙태 시술을 하다가 산모가 깨지 않았다. 무면허 불법 시술인만큼 도망쳐 맨션까지 왔다. 타운에서 꽃님이 할머니가 아이를 받았는데 엄마가 죽어서 키우게 된 우미는 몸이 크고 날렵하다.
우미는 연구소에 자주 갔다. 어깨에 소독솜을 문질러 팔에 주사를 놓는다. 무슨 주사인가요? 물어도 여자는 웃기만 했다. 정신이 꺼져 내리고 멀어진다, 심장을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들,목소리,촉진제 때문일까요? 벌써 증상이 나타날리 없는데...우미는 자신의 성별이나 정체성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월경이 시작되고 기간도 출혈 양상도 불규칙하고 통증도 너무 심해 힘들기만 했다. 성장이 아니라 질병으로 느껴졌다. 산부인과 검진이 시작됐고 난소에 혹이 있다며 전신 마취를 하여 수술을 한 번 했고 자궁내막증 치료는 꾸준히 받고 있다. 남자연구원이 카드 리더기를 그어 문을 열어준다. 무전기에서 미스터키 하나가 연구원을 폭행하고 도망쳤다는 말이 들린다. 우미는 생존자여서 백신과 난치병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확인, 검사, 치료, 시술, 수술 … 매번 다른 이름이 붙어 용인되던 시간들과 그때의 차갑고 축축하고 뻐근하고 따갑고 욱신거리던 감각들이 모조리 떠올랐다.P279
진경이 낯선 남자에 끌려 간 곳은 연구소였다. 실험대 같은 것이 몇 개 있는 곳에서 죽은 듯 누워 있는 우미를 발견한다. 죽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맨션에 어떤 사람에게서 자료 하나를 구해주라고 한다, 수년간 연구소에서 우미에게 무슨 검사를 했는가
소설의 배경은 가상이지만 도시국가의 제도를 비롯해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불안, 절망과 좌절의 감정은 좀처럼 낯설지 않다. 타운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부유하고 삶의 질이 높은 곳이라면 사하맨션은 타운이 거부하는 사람들, 타운이라는 ‘시장’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음은 물론 소모품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의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