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숙의 나라
안휘 지음 / 상상마당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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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를 아시나요

 

 

애숙의 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1650(효종孝宗 1)에 공주를 보내라는 청나라의 강력한 요구에 숙안공주를 대신하여 청나라 장수 도르곤의 첩으로 시집간 이애숙이라는 소녀의 기구한 일생 이야기다. 가짜공주가 되어 청나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눈물 어린 역사이다.

 

몸종 부슬이 서찰을 감추어 애숙에게 내민다. 겉봉에 적힌 김담이라는 이름이었다. <일찍 핀 매화>라는 시를 보냈다. 애숙은 답장으로 <매화절구> 시구를 적었지만 답서를 보내지 않고 장롱 속에 간직했다. 임금의 부름으로 궁에 들어갔던 아버지 이개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을 이었다. 왕실 종친인 애숙을 청국의 섭정왕에게 보냈으면 좋겠다며 형식적으로 규수들의 간택절차를 밟는다. 명분만 그럴뿐 애숙이 가는 걸로 되어 있었다. 애숙은 의순공주라는 작호를 받고 조선의 공주를 대신하여 상국에 받쳐지는 희생물이었다.

 

섭정왕이 먼저 도착한 산해관에서 궁녀 피양구와 조선 출신 하란의 안내를 받고 혼례준비를 하였다. 섭정왕 도르곤은 애숙보다 스물세 살이나 많았다. 만주족은 일부다처를 하는 민족이어서 의순공주를 빼고 아홉 명의 처첩이 있었다.

 

섭정왕 도르곤은 사냥 중에 부상을 당하고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였다, 애숙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도르곤은 만고역적으로 선포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고 만다. 부관참시란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난도질하여 길거리에 내거는 형벌 아유 끔찍해라. 하란은 섭정왕이 역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군사의 말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칼에 찔리고 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애숙은 충격으로 아이가 낙태가 되었다.

 

만주족의 전통인 형사취수(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부인으로 취함)의 습속으로 정국 황실은 도르곤 사망 이후 처첩들을 휘하의 장수들에게 나누어 보낸다고 통보? 그러나 도르곤이 역적으로 몰린 후 일부 장수들은 자결하고 나머지는 변방으로 쫒겨났다. 동생 보로는 좌천이 되었지만 앞길은 끊기지 않았고 애순은 보로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에 나갔던 보로가 보름 만에 중환자가 되어 돌아왔다. 병명은 간경화증이었다, 얼마 못가서 숨을 거뒀다. 애숙은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요로의 집으로 가게 된 애숙은 소복을 입고 안친왕에게 안주인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안친왕은 청을 들어주어 애숙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다 사신단 사은사 정사(正使)로 연경(북경)에 온 아버지 이개윤이 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황제에게 자신의 환향을 청원했고, 황제가 재가해서 애숙은 고국을 떠난 지 6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조선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지도 않은 자신을 장사지낸 족두리 무덤과 터무니없는 선입관 아버지의 파직이었다. 애숙은 절망한다. 전쟁포로가 되어 청나라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인들 환향녀(還鄕女)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쫒겨나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홍제천변 할미꽃마을로 들어간다.

 

10년만에 돌아와 김담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애순의 일 때문에 귀향을 가는 일이 생긴다. 애숙의 어머니는 차라리 김담과 결혼을 시키고 청국으로 결혼을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 애숙은 마음 고생이 심하다가 병을 얻게 된다. 죽어가면서 조선은 아버지에게 어떤 나라입니까? 질문에 조선은 나에게 버릴 수 도 피할 수도 없는 숙명이다. 애숙은 제게 나라는 조선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나라였기에 차마 버릴 수가 없었을 따름이었지요. 그래도 돌아보면 아버지의 딸로 행복한 날이 더 많았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제목처럼 애숙의 나라는 없는 건가 아버지의 나라였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350여 년 전 왕가 종친의 여식으로 태어나, 임금의 진짜 딸을 대신해 청나라 장수의 첩으로 끌려간 의순공주(義順公主)의 한 맺힌 일기장으로 정의한다. 청나라 군대에 무참히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수만 여인들에게 환향녀(還鄕女) 딱지를 붙여 비정하게 내치고 죽음으로 몰아간 사대부라는 이름의 냉혈한들에게 내미는 아주 오래된 고발장이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에 어떤 존재인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아직도 울고 있는 또 다른 애숙은 없는가.(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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