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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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이 책은 제주 출생인 시인 허영선 작가님이 최근까지 <한겨레><한겨레21><코리아나>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서 엮은 에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충격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난 찐빵을 안 먹습니다.

 

70여 년 전, 194731일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참극 제주4·3사건194843일부터 1954921일까지 이어졌으며, 무력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약 25천 명~3만 명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숫자의 희생자를 남겼다. 77개월 동안 섬의 공동체는 절멸했다. 섬은 핏빛으로 새벽과 어둠을 맞았다.

 

제주국제공항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아픈 공간이다. 4·3 70년 동백꽃 배지 하나씩 가슴에 달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뛴다. 어여쁘지만 하얀 눈 위에 뚝뚝 지던 동백꽃 목숨들처럼 아리다. 왜냐하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4·3연구소의 유해 발굴 작업으로 활주로 구덩이에서 드러난 실체적 진실은 충격이었다. 유해 혹은 뼛조각으로 확인된 이들 380구 유해의 가족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산자들의 피와 혈육이 맞는지 맞춰보기 위한 DNA 검사가 이뤄졌다.

 

우리들의 순이 삼촌

아무것도 모르던 팔롱팔롱하던 사람들에 가해지던 참혹한 그해 겨울의 죽음들, 남편 없는 여인들에 가해진 고문들, 수형인으로 끌려간 삼촌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산 자들의 트라우마는 악몽이나 가위눌림, 죄책감 같은 여러 양태로 드러난다. 제주의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늦어도 많이 늦었다. 4·3의 폭풍을 견뎌내며 살아내야 했던 직접 체험자들은 이미 세상을 뜬 이들이 많다. 고통을,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지도 조금의 위로도 받지 못했다.

 

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묘역은 실체 없는 거대한 묘소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모를 그들이 묻혀있다. 헛묘다. 그 묘역의 조각상은 서늘한 리얼리티다.

 

오계춘과 박내은. 1948114·3 초토화 시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숲으로 도망 다니다 토벌대에 붙잡혔다. 둘 다 남편이 행방불명. 구금과 고문,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행. 어린 아기를 업고 산지항에서 목포항으로 향하던 배를 탄 두 여인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심문. “죽은 아기 생각허민 아직도 가슴이 벌러졍 살질 못헙니다. 이 억울함을 재판을 통해서 풀어줬으면 좋겠수다.”(오계춘) “나는 죄가 없는데 왜 그런 고문을 받고 삶을 살아야 했는지 이것이 억울하고 억울하니까 이 원을 풀어주십시오. 억울해서 죽어도 눈 감을 생각이 없어요.”(박내은)슬픈 목소리였으나 있는 힘을 다 짜내고 있었다. p93

 

제주 어르신들이 많이 쓰는 말에 살암시민(살다보면) 살아진다살다보면 살 수 있다는 말이고 사난 살앗주(사니까 살았다)’ 어떤 순간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한 생의 축약이다. 스스로 한 생을 끌어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세계가 인정했다. 제주도의 해녀문화가 지난1일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숨 하나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숨 하나로 바다를 누비는 해녀. 바다와 가장 자연친화적인 인간이 만나 생명력을 교감한다. 이 경이롭고, 이색적인 이미지로만 보여지던 해녀문화를 유네스코가 공감했다.

 

 

 

 

조선적 재일동포는 제주가 고향이어도 올 수 없다. 조선적 재일동포가 한국에 들어오려면 먼저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영사부에서 심사받고 한시적인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여행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하면 들어올 수 없다. 조선적은 일본이 재일동포에게 정치적으로 들이댄 하나의 기호이다. 일본 법무성 통계에 따르면, 제주 출신 재일동포 수는 경상남북도의 뒤를 잇는다. 1923년 오사카와 제주를 잇는 정기여객선 군대환을 띄워 제주사람을 값싼 노동력으로 일본으로 실어날랐다. 현대사 참극인4·3을 피해 살기 위해 떠난 땅이기도 했다. 수많은 재일 1세대가 이념 굴레에 묶여 고향땅 한번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제주가 사라져가고 있다. 어디서든 보이던 한라산과 오름의 스카이라인은 고층 빌딩, 펜션으로 시야를 가리고 마을의 하천들은 무참하게 콘크리트로 뒤덮여지고 있다. 구불구불 길들은 나날이 직선으로 펴지고 공기가 달라지고 있고, 제주의 지형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을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스물도 안 된 나이에 결혼한 제주의 며느리들 중엔 4·3 유족들에게 지원해주는 30%의 병원진료비, 80세 이상의 유족 지원금 월 3만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4·3 특별법의 유족 범주에서 직계가 아닌 며느리는 빠지기 때문이다. 남편 없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도 직계 가족의 희생이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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