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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평점 :
기억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일기를 쓰든 메모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책이다.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아이들 크는 이야기들 누구나 그런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기억해내는 건 한계가 있다. 달나라로 간 소신에 있는 글들 중에는 칼럼을 읽는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기억과 기록이다.
제목에서 달나라가 나오니까 혹시 우주를 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면 틀렸다. ㅋ 소신所信, 사전에는 ‘굳게 믿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라고 나온다. 저자는 ‘소신에 대한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칼럼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골집에 갔다가 <선원속보> 저자의 족보가 들어있는 책인데 딸들에게 난해한 책을 알기 쉽게 가계도를 그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신’칼럼은 잠시 접어두고 정리를 하였다. 글들을 모아 10년이 지난 2018년에 책으로 펴낸 것이다. 책을 읽다가 이 선생이 나오는데 저자의 와이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저자: 이낙진》 1968년 충주 소태면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교총이 발행하는 [한국교육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여러 기관·단체에 이런저런 위원 등으로 이름을 올려놓거나 교육전문가들과 함께 책도 몇 권 냈지만 딱히 에세이집에서 내세울 이력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시사일기 쓰는 숙제가 있었다. 텔레비전 라디오가 흔치 않았던 시절인데, 지금도 그렇지만 텔레비젼만 보고 있으면 공부해라 하는데 저자는 텔레비전 덕을 봤다.
동무 집 마당에서 나무칼을 들고 놀고 있다가, 그 집 큰형이 숫돌에 낫을 갈고 있다가 낫을 떼었는데 그 순간 저자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 무릎 위가 반쯤 잘려지는 사고를 겪었다. 두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얼마나 아팠을까 소름이 돋았다. 퇴원을 하려고 깁스했던 다리를 우악스럽게 한 번에 오므리는데 고통이 장난 아니었겠지만 그때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의사에게 퍼부어댔다 글에 나는 웃음이 났다. 내 경우도 고관절 수술 하고 난 후 엑스레이 찍을 때 손만 대도 고통이 말도 못하는데 그걸 눌렀을 때 기분이었을거 같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수도권에 집을 마련해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근면하게 살았는지 보인다. 한 푼도 안 쓰고 살 수는 없는 일이기에 택시 탈 일 생겨도 버스 타고, 소갈비 대신 삼겹살을 먹어야했고, 아이들 옷은 주로 얻어 입히고 물려 입혔다. 백화점은 멀리하고 할인매장을 가끔 갔다.
딸 키우는 재미, 참 재미있다, 갓난아이가 자라며 눈을 맞추고,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고, 앉고, 서고, 뛰는 것을 보면 나도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고 하였다. 두 딸을 키우는 자상한 아빠로 보인다.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책이 없을 때는 구연동화를 해주기도 하였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서 놀아주기가 쉽지 않은데 딸들에게 모범적인 아빠가 되어 준거 같아 나도 딸 둘을 키워본 엄마로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아빠라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해주겠다고 달려들더니 조금 큰 후에는 오히려 뽀뽀해 달라고 난리다. 딸들은 재우고 깨우는 것도 재미있다. 아기 때는 시간이 되면 잠들었는데 커갈수록 재우는 수고가 더 따라야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쌔근쌔근 잠이 든다. 은이와 윤이는 내가 들려주는 창작동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p96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을 때 나는 직장을 다녔고 결혼하는 해이기도 하다. 저자는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최루탄 냄새에 한 여름에 창문을 꼭꼭 잠그고 회사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가 근처도 아닌데 최루탄 가스는 멀리 날아 다니는가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라면을 좋아했다. 라면은 누구나 좋아하는 거 같다. 얼마 전에 저녁을 먹으려고 김치찌개,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 아빠와 아들들이 앉아서 메뉴를 한참을 고르고 있었다. 신계치 하렴 하기에 신 메뉴인가 하고 돌아보니 메뉴판에 신계치(신라면+계란+치즈)나 짜계치(짜파게티+계란+치즈)적혀 있었다. 나도 먹어보지 않았는데, 저자 역시 아직 먹어보진 못했다고 한다. 이 글을 본 김에 한 번 먹어볼까 생각중이다.
이 책은 에세이집이지만 다른 에세이와는 조금 다르다. 뒷장에 가서 박인기 교수님의 해설을 보면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생애 경험들을 내러티브 양식으로 쓴 글이다. 일반적인 용어로 ‘자서전’이라고 쓰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자서전의 보편적 양식을 그대로 쓴 것은 아니다. 작가의 글쓰기에는 항상 ‘읽기’가 들어 있다. 어떤 소소한 일상의 구체적 사건, 어떤 은밀한 감정의 서술에도 읽기는 늘 따라붙는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습관화된 독서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