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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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왕 서영

 

 

전국 동네 서점에서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된 책! 이 소설은 피구왕 서영을 표제작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침묵한 순간이 얹힌 듯 쌓여 있었기 때문에 조각은 빠르게 모였다. 개인적인 기록에 그지치않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닿기 위해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 조각을 소설로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서영이 처럼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십리길을 걸어 읍내 초등학교를 다녔다. 기억이 없는건지 왕따를 당하거나 왕따를 시킨일이 없는거 같다. 그런데 내 딸이 친구를 왕따 시킨일이 있었다. 잘 해결 되어 지금은 베프가 되어 있다. 아이들은 크면서 그런 과정을 겪는거 같다. 소설 속의 이 서영은 작가 또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피구왕 서영

서영의 집은 자주 이사했고, 덕분에 자주 전학을 가야만했다. 전학은 몇 번 겪은터라 익숙했지만, 이방인이 새로운 무리에 합류하려면 긴장과 예민한 탐색이 필요했다. "서영아,점심때 밥 같이먹을래?" "그래"

서영은 짝 윤정이 마음에 들었다. "안녕, 나는 최윤정이야.'라며 먼저 인사를 하던 말씨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런데 윤정은 반에서 왕따였다.

 

  

  

 

"아까 너랑 같이 밥 먹은애 별로니까 놀지마." 박정은이라고 소개하고 말한다. 하교를 하고 여러명이 모여 피구를 하고 있었다. 서영에게도 합류할 것을 권유인 듯 강요 같은 제안에 머뭇거리며 들어갔다. 연습을 마치고 같은 방향이라며 같이 가던 현지는 너네집 몇평이냐고 묻는다.

 

오른손이 불편해서 공을 떨어뜨리는 윤정은 저녁마다 연습을 한다. 윤정이와 노는 시간도 재미있고, 이렇게 피구가 좋아질지 몰랐던 서영은 좋아하는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음에도 피구 공을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찾을 정도로 좋아하는 피구를 싫어하게 된다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물 건너기 프로젝트

할머니는 아들,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입에 달고 사셨다. 둘째는 무조건 아들이어야한다는 말에 엄마는 동생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 마자 무당을 찾았다. "아들이 태어나면 딸한테 잡아 먹힐팔자야" 뭐 이런 흉한 말이 있을까.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딸이 물만 안 건너면 되니까." 엄마는 거금을 주고 무당에게 부적을 받아왔다. 주영은 죽을 힘을 다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외도 하고 아르바트를 해서 목돈을 모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교환학생으로 지원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였다. 누나가 물 건너가면 남동생한테 해가 된다는 말을 들어와서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합법적으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가 절실했다. 결국 끝까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고집하는 나에게 그 애는 더 조르지 못하고 미국에 있는 유명 대학교 중 자신의 전공커리큘럼이 가장 다양하게 개설된 한 학교를 골라 지원한 후 합격했다.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해둔 상태였고, 나 역시 비자를 받았다. 그 애는 미국으로, 나는 호주로 간다는 게 확정된 후 우리는카페에서 만났다.p165

   

 

사람 알레르기 항원 때문에 고생하던 많은 대한민국 회원들은 여전히 매일 알레르기 반응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유인물에 인쇄된 몇 가지 물렁물렁한 대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신종 유형의 언어 폭력을 당했다는 하소연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리의 범지구적인 연대가 성공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없다. 그래도 많은 회원이 협회를 탈퇴하지 않고 남아 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회원들 모두 미약하게나마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p226 알레르기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까만 옷을 입은 여자는 집단 내 이야기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려 선택하게 된 것들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예쁜 모양새가 통일이라도 된 듯이, 온갖 미디어와 생활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바람직한 모습이 그려진다.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통일시키려는 것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있는 그대로 아릅답다는 슬로건을 쉽게 내걸면서도 사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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