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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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다시 소설을 써야겠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때 내게는 누군가의 죽음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걸 어떻게든 소설로 쓰지 않으면 소설 쓰는 일이 여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주 어려워질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종래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언가가 심각하게 파괴된 것처럼 종래 내가 쓴 소설 중 무언가가 파괴될 필요가 내게는 있었고 나는 디디의 우산을 선택했다. 디디의 우산을 선택한 이유는 디디가 혁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말중에서)

 

 

인물과 서사는 다르지만 시대상과 주제의식을 공유하며 서로 공명하는 연작 성격의 중편 2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17년 촛불 혁명이라는 사회적 격변을 배경에 두고 개인의 일상 속에서 혁명의 새로운 의미를 탐구한 작품들이다.

 

'디디의 우산'을 읽고,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자살 안내자' 역활이다. 두 소설의 내용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죽음과 파괴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하는데, 나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다. 가슴이 먹먹하다.

 

ddd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둘은 동창이다. 학교에서 낙뢰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dd와 말하고, dd와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었다는데 그 기억이 d에게는 없다. ddd를 동창회에서 다시 만났다. 종일 차가운 비가 내린 날이었다. dd가 곁에 서 있다가 자기 우산을 내밀었다. 내 거 가져가. 한사코 거절하려는 d에게 dd는 네개 우산을 빌렸다고, 빌렸는데 돌려주지 못한 일이 내게 있었다고 말했다.

 

dd는 죽었다. 내동댕이 쳐졌다. d는 거의 모든 사물에서 온기를 감각하게 된 뒤로 외출하지 않았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누구와도 통화하지 않고 그다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사물들을 부수고 쪼개고 버렸다.<디디의 우산-d>

 

이제 행복해지자, 너의 행복과 더불어
세계라는 빗속에서 황정은이 건네는 우산 같은 소설

게는 단편이 되다 만 열한개의 원고와 장편이 되다 만 한 개의 원고가 있다.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내 데스크톱에 폴더를 만들고 거기에 그 원고들을 담아두었다. 열두개의 원고, 모두 미완이므로 종합 열두번의 시도, 그 흔적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단 한가지 이야기.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p151)

 

1882년에 시력장애로 고통을 겪던 니체는 덴마크제 몰링한 센 타자기를 구입했고 그 사물 덕분에 새로운 방식으로 집필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것은 손으로 펜을 쥐고 필압을 조절해가며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니체가 수기에서 타자로 넘어가며 거의 경이를 경험했을 거라고 믿는다. 니체의 의사이자 친구였던 자끄 로제,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 학자 고병권 등은 1881년 이후 니체의 변화를 기록하며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경쾌하게 만들었는지,(중략) 나는 그 변화를 원인들 가운데에 타자기를 밀어 넣고 싶다. 니체는 두들겼을 것이다. (p156~157)

 

19876월 민주화항쟁에 엄마와 아빠도 몫을 했다는 이야기는 그 전에도 몇번, 그들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너희 엄마하고 아빠가 그때 광화문에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을 그때 처음 봤는데 거기에 경찰이 최루탄을 빠바바바바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와악, 흩어지더라

<디디의 우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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