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100세 철학자의 대표산문선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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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남아 있다. 나도 같은 문제를 갖고 백수白壽를 맞이하는 오늘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온 셈이다. 그 열정은 인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얼마전 kbs 아침마당에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 나와서 강의를 하셨다. 2019100세가 된다고 하였다.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교수님의 나이에 절반 하고 조금 더 살았는데, 그 세월을 살아낼 수 있을까. 힘들거 같다. 김형석 교수님은 지금도 책을 읽고 책을 내신다. 단지 힘든건 배우자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곁을 떠나는 거라고 하였다. 100세 철학자의 대표 산문선을 읽고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을 해본다.

 

나는 오십 대 중반까지는 주어진 일 때문에 세월이나 시간에 대해 자기반성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육십오 세가 되었다. 30여 년 동안 봉직해오던 대학생 생활을 끝내게 되었다. 대학을 은퇴한 것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했다고 생각 한다면 졸업생은 사회로 나가 새 출발을 해야 한다.(중략) 해는 곧 산 뒤로 자취를 감추고 세상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 것이다. ‘해가 지는 데 몇 분이 걸릴까. 내 나이도 저 태양과 같은 순간에 이르고 있는데 몇 해나 남아 있을까. 몇 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져 있을까. 그 시간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p15)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추운 날 밤 갑자기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머리 수술까지 받고 1개월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해매였다. 아내는 발병하고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23년 동안 어느 정도의 의식은 있었으나 한마디의 말도 못하고 지냈다.(p16)

 

나는 또 하나의 인 그와 대화를 해야 한다. 사귀어야 한다. 벌써 어머니는 저쪽으로 가셨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와 그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영원’,‘죽음’,‘무한’,‘허무’,‘운명등에 관한 대화이다. 이러한 대화에 잠기게 되면 나는 고독해진다. 끝없이 묻고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말이다. 안타까이 붙잡아도 잡히는 것이 없다. 나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도 메아리조차 없지 않은가! 공기가 내 몸을 둘러싸고 있듯이 무한과 허무가 나 하나만을 둘러싸고 가득 차 있다.(p57)

 

나이 든 사람일수록 일이 있어야 한다. ·장년기에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일수록 노년기에는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일을 놓치면 시간과 삶 자체를 상실하기 쉽다. 그러나 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100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90 정도의 일을 맡는 자세가 좋다. 욕심내어 120의 책임을 맡게 되면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건강까지 망가뜨리기 쉽다. 90의 책임을 맡는 사람이 여유를 갖고 일을 즐기게 되면 120의 일까지도 할 수 있다.(p85)

 

김형석 교수님 생명의 은인은 북진에 있었던 파워라는 의사였단다. 병약하게 태어나고 자주 경기를 일으키곤 했는데 미국 의사 파워가 정성껏 살펴보고 약을 처방해줘서 지금까지 누릴 수 있었다고 하는 대목은 인연이라는게 따로 있나 보다.

 

나는 윤 형(윤동주)과 한 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그의 곧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까이서 느끼곤 했다. 윤 형은 그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황순원 선배와 더불어 학교 잡지인 <숭실활천> 편집에 정성을 쏟던 흔적은 지금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주 형은 일본의 도쿄와 교토에서 수학하다가 일경에 붙들려 투옥, 해방을 앞두고 29세의 삶을 마감한다.(p116)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

니체의 말과 같이 모든 삶은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앞으로 가려니 공허 위에 달려 있는 줄이기에 두렵고, 뒤로 돌아서자니 마찬가지의 공허가 있다. 그대로 머물러 있자니 밑으로 떨어질까 두려워진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사색에 잠겨 앞도 뒤도 모르고 살아왔던 일, 앞을 보지도 않고 생각에 몰두했던 것뿐이다.(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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