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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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은 20188,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인 아침의 피아노를 남겼다. 20177월 암 선고를 받고 20188월 임종 3일 전 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썼다고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병에 대한 면역력이다. 면역력은 정신력이다. 최고의 정신력은 사랑이다.(p13)

 

자꾸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위안을 주려는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게 된다.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는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환자의 당당함을 지켜야 하건만...

 

병을 앓는 사람이 갑이 될 필요는 없지만 을의 자세를 취한다니 아픈 몸이 위축되었음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해충이 없다. 문을 열고 자는데도 모기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 물가에 앉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건 여기가 쉼 없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p51)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어제 누군가가 말했다.

"제가 힘들어하면 선생님은 늘 말하곤 하셨어요. 그냥 놔둬,

나두고 하던 일 해그 말씀을 돌려드리고 싶네요."

 

아침 산책. 단풍나무아래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 새들이 빠르게 하강하더니 더 멀리 날아간다. 가을 하늘이 왜 그렇게 맑고 깊고 텅 비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 나는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어. 사방이 열려 있어. 모든 곳이 길들이야. 그러니 날아올라. 날개 아래 가득한 바람을 타고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천상병은 노래한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깊다고,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러니 바람아 씽씽 불라고 ……이번 <한겨레>칼럼은 천상병에 대해서 썼다. 어느 정도 만족.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사람은 죽지만 이름은 남는다는 말을 상기 시켜주는 글이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를 지키려고 쓰는 글이라니 철학자 답다.

 

2주 전부터 왼쪽 고관절이 불편하다.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어 오래 걷기가 힘들다. 척추 협착이 있어 평소에도 편치는 않았던 곳이지만 양상과 조짐이 조금 다르다. 지난주 CT 소견에도 전이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적혀 있었다. 지난겨울 장천공으로 열흘을 금식한 뒤에 나는 43킬로그램이었다. 내가 병원 복도를 걸어가면 해골 표본이라도 보는 듯 사람들의 힐끔거리곤 했다. 그때에도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직립 보행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힘들지만 그 보행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걷는다. 몸도 정신도 마음도 걷는다. 보행이 생이다. 나는 이 보행의 권위와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248)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 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들의 내용들이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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