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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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은 현재, 과, 회상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 된다. 이 소설의 상징은 벚꽃의 만개와 사라짐 사이에서 해석된다. 인물의 감정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독자에게 상상을 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이다.

 

 

책 소개

처음에는 3인칭 시점으로 썼다. 첫 장을 완성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치고 리듬도 빨랐다. 인물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고 타인의 고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배후에 숨어 인물들의 인생을 조종하는 초연한 시건을 만들어냈다. 한달 뒤 첫 글자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남의 이야기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모두 내 슬픔으로 바꾸었다.

겉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녹록치 않은 인생에서 사랑을 빼앗기고 이상이 무너지고 미래가 박탈당한 순간의 이야기다.

 

나와 추쯔는 작은 전기주전자를 산 뒤 이벤트에 당첨되어 수동 카메라를 받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추쯔가 사진 촬영에 매료되면서 그들 앞에 다른 길이 펼쳐진다. 추쯔는 사진반에서 자원봉사로 사진을 가르치는 뤄이밍을 알게 된다. 그는 부자였고 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지만 결국에는 돈을 무기로 사랑을 빼앗음으로써 하룻밤 사이 소설 속 나의 인생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일어난 그 사건이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나를 완전히 파멸시켰을 때도 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바깥세상은 화기애애한 곳이어야 했다. 작은 마을은 여전히 한 영웅이 발산해낸 영광의 빛에 취해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온전히 살아남아 이따금씩 그 갈채 뒤에 숨겨진 조롱을 느끼고 이따금씩 타인의 고통이 가져다 주는 괴로움을 경험해야만 이 세상에 영원히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인생의 씁쓸함을 아는 사람만이 커피의 묵직한 향기를 폐부로 받아들여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독한 영혼을 깨워낸 뒤, 터져 나오려는 신비로운 탄식을 욱여 삼켜 비루한 식도와 목구멍 사이에서 수줍게 맴돌게 할 수 있었다.

 

그때 뤄이밍은 뭐라고 했을까? 어떻게 생긴 흉터인지, 아프지는 않은지 물었을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인생을 송두리째 잃는 것이다. 요즘은 추쯔의 은밀한 부위에 대한 애틋함은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슬픔이 차오른다.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여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에 혐오감마저 든다. 그녀의 젖가슴이 나를 배신했는지에 대한 의심보다는 그 시커먼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내가 상상하는 뤄이밍 선생님은 추쯔의 사진 속에서 본 벚나무와 그녀가 무심코 했던 말들, 즉 그의 수업 광경이나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 오래된 합원식 가옥, 나무로 된 회랑 같은 것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뤄이밍의 집에 들어설 때 작은 질투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게다가 그곳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웠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 이토록 아름다운 집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고, 앞으로 남은 생에서 이보다 더 고상한 집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집주인은 겸손했다.

         

적은 꿈속에서 파멸시키고 벚꽃은 침대 옆에 흐드러지게 피었네.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든 추쯔를 기다릴 거예요. 그녀에게 아직 들려주지 못한 얘기가 있어요. 염소 이야기요. 그 염소를 내가 미워하는 아버지에게 드릴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도둑맞았죠. 결론은 이렇게 간단해요. 한마디로 하면, 내 이야기는 염소 한 마리의 이야기예요. 남자의 슬픔은 그렇게 작아서는 안 돼요. 너무 작으면 인생에 파고 들어왔을 때 영원히 뽑아낼 수 없으니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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