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여자들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5
박문영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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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의 여자들 박문영 SF 소설"

 

어느 날 남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소도시 구주시의 남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화를 내거나 폭력을 가하는 남편들이 여자들은 차라리 돌아오지 말고 죽어버려라 한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말을 할까 상상을 해본다. 남편이 아내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연기 처럼 사라졌다니 SF 영화를 보는 듯 하였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어떤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저자: 박문영

남쪽 지방 소도시에서 고양이 미세, 먼지와 함께 작업한다. 주로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루며 매일 그림일기를 쓴다. 1회 큐빅 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에서파경으로 수상, 2SF 어워드에서 중편소설사마귀의 나라로 대상을 받았다. 소설 외에 시리즈 그림책그리면서 놀자, 만화집봄꽃도 한때(공저), 멸종위기종을 위한 웹툰'천년만년 살 것 같지'를 만들었고 이를 확장한 만화에세이집천년만년 살 것 같지? (공저)2018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박문영은 SF가 멀고 캄캄하다고 느끼는 독자와 함께 이 장르의 아득한 폭과 너비를 천천히 여행할 예정이다. 자리를 못 잡고 겉도는 것, 기괴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대상, 여성·어린이·청소년의 감정과 심리에 관심이 많다.

 


 

 

외계 존재가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키는 도시 구주’.

이곳의 남성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구주의 낮과 밤은

서서히 여자들의 것이 되어간다.

어쩌면 이곳은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시에 가장 먼 세상일 것이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 구주, 식당으로 들어가는 다문화 가정의 모습이나 터미널에 앉아 김밥을 먹는 노부부의 모습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성연 또한 그 불안한 평화에 섞여 출장을 떠나는 자신의 남편을 배웅하고 있었다.

 

봉분앞에 주저앉은 여자가 아들의 이름을 다시 외쳤다. 아이를 업은 필리핀 여자는 그 둘레를 서성였다. 여자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주먹으로 배를 치던 남자가 없어졌다. 모공과 입술이 검은, 자신보다 13살이 많은 남편이 사라지고 없었다. 시모가 입을 벌린 채 풀 더미 위로 드러누웠다.

 

국내외 곳곳을 다녀 본 형근에게도 이번 출장은 길었다. 국제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였다. 회의, 워크숍, 포럼, 전시까지 서울에서 마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부부는 90여 일의 작별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성연은 형근이 다른 작업 의뢰를 계속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27

 

희수 어머니는 자신을 냉장고로 밀치던 그가 갑자기 뒤를 밀려났다. 거실 형광등 빛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쏟아진 희끗한 먼지들이 그의 몸에 내려앉았다. 남편이 허공에서 발버둥을 쳤다. 모든 게 헛것 같았다.

   

 

'요새, 보루, 유토피아' 같은 단어가 구주 앞에 붙었다. 구주는 여성들이 살고 싶은 도시로 불리기 시작했다. 인구 유입은 아직 미비했다. 실종자가 성인 남성에게 다른 계층으로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사건이 구주에서만 벌어질 거라 확신할 수도 없었다. 생산기반이 취약한, 늙고 한적한 땅은 말의 홍수로 출렁였다.

 

구주에서 종적을 감춘 성인 남성은 현재까지 경찰 추산 29명으로 발표되었다. 실종자들의 공통점은 꽤 겹쳤다. 그들 대부분은 중장년의 군필자였다. 담배와 술에 중독되지 않은 자는 드물었고 열에 여덟은 성인병 증세를 겪고 있었다. 폭력 전과 기록이 불거져 나왔다.

 

  

여자는 신부가 말하는 투쟁의 역사에서 누락된 대상을 알고 있었다. 실종자가 167명이라면 고통당한 이들의 수는 그 이상일 것이다. 교단이 월요일 아침의 구령대 같았다. 그는 헌금 봉투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죽은 듯이 살아야 했던 여자들의 존엄은요? 실종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신의 섭리라면요?” 여자는 성당 입구에 놓인 바구니에 봉투를 놓고 떠났다. 미사가 끝난 후, 메모를 확인한 신도가 종이를 구겨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세상의 종말이 한국인들에게서부터 온다고, 세계의 멸망이 한국에서도 시작될 거라고 말한 작가가 있어요.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에밀리 엘이라는 소설에 적은 구절이죠. 그런데 이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세상의 끝과 시작이 한국 구주에서 동시에 움텄으니까요."

 

 

작가의 말

여성들이 주축이 된 사회가 훌륭하고 정결할 거란 판단은 편견일지 모른다. 거기도 떠도는 여자들이 살 것이다. 해이, 이기, 의심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이들이 자리할 것이다. 소도시 구주에도 이곳과 같은 빛, 그늘, 경계가 있을 거란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 함께 폐쇄구역을 헤매면서 늦지 않게 밝은 땅이 나올 거라 믿었다. 겁이 나는 밤마다, 읽을 수 없는 별자리를 보면 덜 불안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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