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 타이베이 가족연습여행
김혜영 지음, 조대용 사진 / 서행성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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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럼]'아픔도 삶이다' 김혜영 작가님의 첫 작품이다예비 며느리까지 5명이 여행을 하다니 부럽다. 아이가 결혼을 하면 같이 여행하기는 쉽지 않은데 가족 여행을 하였다. 책은 엄마가 쓰고, 사진과 그림은 아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저자는 1인 기업 서행성 출판사 사장님이기도 하다. 아들을 유학 보내던 엄마의 마음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저자 소개: 김혜영

30대에는 분만실 간호사, 광명문화원에서 어린이 독서교육, 광명여성의 전화에서 여성운동과 지역운동을 하고 살아감. 40대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어 공부와 자녀교육, 교회 청소년 교육을 하는 전업 주부이자 여행자로 지냄, 50대에 귀국하여 요양보호사 교육원 전임강사 생활을 시작함. 60대를 앞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가 <앙코르 앙코르>라는 나만의 책 만들기에 도전함. 길은 또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숭례문학당 100일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시럼,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시어머니가 되어보겠다고 <오늘처럼>을 기획하고 타이베이 여행을 떠남. 내친김에 1인 출판사 '행성'을 시작함. 구불구불한 샛길에는 더욱 작고 소소한 이정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며 후반부 인생을 살고자 한다

 

조대용: 중국에서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10년을 살아온 중국통, 국제관계를 전공했으나, 사진에 매력을 느껴 카메라를 메고 자전거 타고 중국을 누비고 다님. 졸업 후 케냐 '뭉게' 초원에서 2년 동안, 카메라 하나로 충만한 시간을 보냄. 현재 '기아대책'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일러스트 공부를 하여 이 책의 사진과 내지 편집을 담당함. '여행의 습작'이라는 작은 사진집을 출간함. 앞으로 서행성의 사진과 편집 디자인을 담당할 계획이다.

 

프롤로그

타이베이 여행은 아영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낯설지만 행복한 기회였어요. 이제까지 남자들(두 아들과 남편)가운데서 여자 혼자였기에 내밀한 정서를 나누기엔 한계가 많았죠. 여성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저에게도 즐거운 기대였어요. "우리 새 가족이 들어오기 전에 함께 여행 가서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게 어때?"라고 제가 먼저 제안을 했죠. 즐거운 경험으로 새로운 역할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여행은 자기 담장을 허물고, 함께 가는 여정이니까요. 왜 하필 타이베이였냐고 묻는다면, 다섯 사람 모두 그곳을 마음에 들어 했고, 비교적 거리가 가까워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죠. 내성적인 큰 아들이 주인공이 되게 해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전략도 숨어있었죠. 내 예상대로 중국통인 아들(중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중국에서 다녔다)은 대만에서 누구도 의심치 않는 현지인이었죠. 그가 가족을 리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아들은 능수능란하게 가족을 이끌었고 '아영'은 연인의 능력에 감탄했어요.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한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나의 40대는 중국어를 익히고 사용하는 데 애쓴 세월이었다. 7년 만에 제3지대(중국 문화와 언어지만 다른)에서 고향을 만난 기분이랄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익숙하면서 다른 냄새였다. 중국에서 돌아온 지 7년째인 남편은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 11년을 중국에서 보냈다. 번영도 쇠락도 그 세월에 다 녹아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돌아온 것처럼 강렬한 기억들이다.

 

아들이 출가외인(出家外人)

나도 장가보내는 엄마 수업이 필요하다. '시월드'라고 말하는 요즘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은 이제 '그녀'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긍정형으로 나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모들의 존재가 더 이상 억압이 아닌, 자식들에게 쉼터 되는 것. 이제는 만남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다. 이제까지 시댁은 얻어가고 여자는 자신을 버리고 남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나는 이러한 불평등한 가족구조를 깨고 싶었다.

 

여행은 가족으로서 첫발을 내딛기 위한 좋은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노동을 대가로 먹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이 차별되는 만남. 그런 만남이 시댁이라는 정체성이었다면, 맛있는 것, 낯선 경험을 함께 즐기기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늘보기, 떠나보내는 마음

 

보냄1

처음 널 보낸 날,

하늘은 가슴 시리게 높고 푸르렀지. 네가 태어난지 백일이 지나자마자 널 보내야 했지. 아빠는 학생이었고, 나는 일을 해야만 했어. 적어도 아빠가 졸업해서 취직할 때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지. 그러나 내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거대한 그물망에 들어선 삶이라는것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었어.

 

보냄2

음습한 황사로 뿌연 하늘,

넌 청도에서 북경으로 12시간이나 걸리는 잉쭈오(가장 저렴한 완행열차의 좌석)를 타고 집을 떠났지. 책을 많이 읽어서 '조박사'라는 별칭을 가진 너는 속내를 말한 적이 없었지. 그래도 친구들은 너의 가슴 속에 숨은 지식창고를 알고 있기에 그렇게 불렀던 거 같아. 가끔 성마른 엄마가 채근하면 억지로 한 두 마디 하는 게 전부였지. 정치외교학과만 가겠다고 제2, 3을 고려하지 않은 네가 결국 서울대 1차에 합격하고도 한국에서 다시 중국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을 때, 그 뿌연 하늘만큼 나도 캄캄했지. 그러나 난 "괜찮아, 넌 무얼 해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쿨하게 말하고 쿨하게 북경으로 보냈지

 

보냄3

우린 모두 한국에서 재회했지.

10년 만에 가족이 뭉치는 날, 조국의 하늘은 무거웠지. 금의환향할 줄 알았던 아빠가 사업체를 포기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들어왔으니까. 넌 졸업하고 들어오자마자 군에 입대를 했지. 군에 가있는 동안 우리가 함께 살아갈 거처를 준비해야 했어

 

보냄4

"엄마, 저 케냐로 떠날 거예요. 해외 봉사단 1년 계약 했어요." 제대하고 취업준비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부모 동의서를 내밀었지. "케냐?"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는 어설픈 편견이 있었지만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취업 준비 하느라 시간 낭비 하는 것보다 1년이 두고두고 너에게 값진 경험일 수 있겠다."라고 말했지.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너희들의 말을 듣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어렵진 않았어.

 

 

작년에도 올해도 비수기에 여행을 한다. 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주류를 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의 인생이 비주류를 지나온 것처럼, 성수기 여행을 좋아하지않는다. 주렁주렁 매달린 고구마 줄기처럼 성수기에 매달린 여행객이 되고 싶진 않다. 누구나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매달린 채, 어디서나 줄을 서야 하는 여행은 정말 싫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비쥬류에 해당하는 삶을 살게 했지만 내 나름의 감각과 가치관으로 당당하게 살았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애씀이 권태를 만들고, 회피를불러온다.

부모는'난 타인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아.

나 스스로에게 기대를 걸지.'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삶은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설계해야 한다.

누구 아들은, 누구 며느리는,누구 딸은, 이런 말에서

자유로운 부모라면 좋겠다.

그들은 그들 일 뿐. 나는 나의 삶의 방식에 따라 살며,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의연해지기.

없는 그대로 당당해지기로 하면 좋겠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의식에서도 자유로우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자격이다.

 

'먹기 위해 여행 온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융캉지에'로 왔다. 연남동, 홍대거리에서 흔하게 마주치던 음식 거리들 같다. 킹 망고, 우육면, 까오지, 딘 타이펑, 동먼 교자관 등은 인터넷에 교과서처럼 올라오는 '메뉴파탈'이다. 상가 뒷골목을가본다. 낮은 담장에 작은 간판의 파리야행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많이 보았던 양장점 모습이다. 유명한 상업지대임에도 일본식 건물들이 드문드문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가게들. 높지 않은 상가들. 소리 높여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조용한 상인들. 우리가 비수기에 평일. 비오는 날임을 감안하더라도 좀 고즈넉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때만 변화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벨 훅스'는 우린 여자들의 내부에 도사린, 타인을 억압하고 상처 입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라고 말한다. 외부를 향해 화살을 돌리기 전에 우리의 내면의 적을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라는 지위가 만들어진다. 남성(아들)을 중심으로 맺는 힘의 역학관계다. 나는 이 낡은 계급장 같은 시어머니라는 호칭이 싫다. 호칭 안에서 부자유스러운 성과 연령이라는 단어를 사랑의 연대로 새로 쓰고 싶다. 내가 여행을 제안하고 함께 한 이유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아영이가 묻는다.

"글쓰기보다 먼저 책읽기였지. 책을 너무 좋아하다보면 나도 쓰고 싶어지는 거지. 딱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고, 엄마가 되어 내 삶이 제한된 그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독서 모임과 글쓰기가 마지막 남은 탈출구 같았다. 그녀에게 내 삶의 원동력을 들려주자 맑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인다.

 

에필로그

흔히 가는 여행지, 흔한 여행기를 왜 쓰는 거냐고 할까봐 소심한 마음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도 누군가에겐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새 가족이 되는 아영과 우리의 인생 워밍업 같은 여행을 결혼식 기념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혹시 우리 결혼식 빙자해서 엄마 작가 데뷔 무대로 활용하려고 하는 흑심이 있는 것은 아니죠?" 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묻는 아들에게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뜨끔하기도 했다.

내가 여행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닌데 뭘. 속으로 웅얼거리며 책 한권을 쓰긴 썼다. 쓰고 보니 선물로만 남기고 말기엔 아까운 욕심이 생겨났다. 출판사 이름을 등록하고 싶고, 더 나은 책을 쓰고 싶어졌다. 책을 쓰는 도중에 출판사 이름을 수도 없이 짓기 시작했다. 임신하고 나서 아이 이름 짓느라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던 경험과도 비슷했다.

기어이 출판사 등록을 하고 사업자 등록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내게 새로운 행성으로 데려다 준 셈이다. 그래서 '()행성'에서 출판한 최초의 내 책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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