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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네가 선생님을 했으면 좋겠어
김차명 지음 / 일요일오후 / 2025년 2월
평점 :

과잉 일반화의 오류의 교사의 사회적 통념
교육의 가치로 사회에 헌신하는 선생님의 총 숫자는 2024년 기준으로 196,598명에 이른다. 이에 각각 3할의 6할의 인원은 교장 교감의 위치에 놓여진다. 전체 공무원 숫자 중, 단연코 가장 많은 구성 비율을 차지한다. 그렇다보니, 중소 도시 정도의 선생님들의 인성, 자질은 천차만별 일 수 밖에 없다.
내 주변의 친척만 봐도, 선생님이 여럿 될 정도이다. 이렇다보니, 저급한 매체에 의해 교사들에 대한 인식이 오염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의 본질과는 전혀 딴 이슈를 덮기 위해, 교사에 관한 이슈를 퍼뜨리는 일이 많다. 「그래도 네가 선생님을 했으면 좋겠어」 는 교육현장의 교사가 쓴 선생님에 관한 책이다.

공무원 전체의 범주에서 보면, 교사 만큼 변화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공무원은 발견하기 힘들어 보인다. 밀레니얼 2000년을 기점으로 하여, 디지털 기기에 부적응하면, 기본적인 교사 역할의 유지를 하기 힘든 단계에 들어섰다. 교실 현장을 체감할 수 없는 일반인의 견지에서는 주로 교사에 대한 인식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요자들로부터 인식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적이다. 그런데, 기초 학력은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이다. 예전의 교과 편성이 문과 위주로 되었다면, 지금은 이과 편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웬만한 4년제 대졸을 나와도,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시험지를 받아본다면, 과연 고득점을 담보할 수 있을까? 시대가 빠르게 변할수록, 교육에 있어서도 양극화 현상은 심화된다. 정보 범람의 시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정보의 대칭성에 놓여 있어도, 차별성을 위한 교육 측정이 공교육에 반영되니,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력격차가 유발된다.

과거의 고밀집 교육세대들이 OECD 기준에 맞춘 학생 숫자 만 강조하니, 학교 라는 교육공동체를 통해 생성되어야 할 학교에 대한 소속감 동질감이 사라진다. 지금의 학생 숫자와 비교할 수 없이, 대규모 증축을 했던 학교는 이젠 초미니 학교로 변모한 곳이 여럿이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믹스업 학생 캠퍼스를 구축할 수 없으니, 학교 단위로 가외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종속적으로 학교가 구축되니, 기존 도심의 학교는 폐교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신규 학교 증설 이전에 기존 학교를 어떻게 증설해야 할 지는 뒷전에 있다. 고작해야 막대한 예산으로 전시성 교육박물관 건립하는 게 고작이다.
참교육을 위한 본질적인 관심
안타깝고 씁쓸한 서이초 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으로 인한, 선생님들의 집회를 보면서 참교육의 본질에 접근하는 모습이었다. 60년대 오로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각종 악법에 기반한 것이 현재까지 상당수 이어져오니,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고밀도의 교실 환경에서 교육받은 세대의 경우, 체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소한 일 로도 선생님 으로부터 뺨을 맞기도 하고, 엎드려 뻗쳐 성적 1점 하락시 1대씩 딱딱한 목봉이 부러지도록 맞아 본 기억이 있다.
어쩌면 이 불합리함 속에서, 이 세대는 독재와 민주주의를 몸소 체화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학생들의 정치 의식이, 맹목적인 세대보다 훨씬 뛰어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솔직히 수능성적에 따른 세습적인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대대로 나라의 부는 차지하는 재벌가의 후손 이거나, 사회 지배적 네트워크가 견고한 계층을 제외하고 대다수는 후천적인 '운칠기삼'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이어진다.

어떤 면에선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하는 역량 자체가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응용하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잠재성이 많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노력하는 역량, 일정한 시간내에 수업내용을 판서하고 설명하는 명쾌함이 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행복을 추구할 동기부여를 하는 리더이다. 그 리더로 인해, 학생들의 인생이 달라진다. 리더가 맹목적인 신념 이념에 갇혀,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한다면, 그것만큼 심각한 문제도 없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그것을 개별적인 가해자 VS 피해자 식의 법적 공방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님의 자유를 침해하는 성향이 아주 강하다. 이는 부모가 학생의 교육 정도를 쫓아가지 못해, 선생님에게 전가하는 태도에도 있다. 만약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이것을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공론화도 하고, 알력이 작용되지 않도록, 인근의 다른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등으로 객관성을 보완할 연대적 노력을 했다면, 당사자의 성향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에 따른 책임은 높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똑같은 직장에 소속되어 있어도, 각자의 성향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참교육이 활성화될 수록, 교육현장은 다양한 인성 교육 모델이 추구될 것이며,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한 자양분을 제시할 것이다. 가장 납득 불가한 사실은 교육 현장엔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면서, 왜 교육감의 역할도 모르는 과거세대의 투표에 따라 아이들의 교육을 이끌어 갈 리더를 선출하는가? 하는 것이다. 최소한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도 없고,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자들이 번번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양상이 씁쓸하다.
교육에 대한 정책이 교육 현장을 모르는 고시 출신의 "행정관료"에 좌우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에세이 형태로 쓴 「그래도 네가 선생님을 했으면 좋겠어」 는 선생님에 관해 여러 맥락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 내용을 목차 순서대로 나열하는 건 무리가 될 것이라 여겨, 두서없는 생각을 담아본다.
이 책 서평은 문화충전200 네이버 카페 주관, 일요일오후 출판사를 통해 무상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내용입니다.